생명의학(Lifecaring Medicine)과 기술의학(Technicshowing Medicine) (II)
1. 의학이란 무엇인가?
의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단어에 명확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의학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의(醫)는 뭐고 학(學)은 뭔가를 알아야 한다.
의란 편하게 생각해서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자는 지식과 기술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즉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옛 일본인들이 의사라는 말을 만들어 낼때 선비 사(士) 자 대신
스승 사(師)자를 썼다. 그 전에는 그냥 의자(醫者)라고 했다.
스승이라고 글을 만든 이유는 옛날 삼황오제의 하나인 황제가 의학의
지식을 기백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그룹을 스승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학이란 무엇인가? 체계를 갖춘 지식을 말한다. 체계를 갖추었다고
해서 모든 학(學)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리는 학이 아니고
학 너머에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학이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란 현실에서 적용이
되는가 안되는가로 금방 드러난다. 다만 사람들은 학이란 용어가
주는 이미지에 이미 쇠뇌되어 권위부터 부여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의학이란 아픈 것을 낫게해주는 지식체계를 말한다. 여기에
의자들의 개개인의 현장에서의 기술이 합하면 소위 의료업이 된다.
그런데 지식체계는 위에서 말한대로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도 같이
알아야 한다. 또한 기술도 개인이 하는 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자.
자 이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요즘 세상에 유행하는 의학 내지는 의술에
대해서 정리해보자.
의학을 바탕으로 기술을 제도적으로 독점적 권한을 받은 사람들 즉
의자들이 행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보면 요즘의 의술은 생명현상의
발달조작(유전학), 인체개조(성형내지는 정형), 손상부위 정리(수술)
전염병 치료, 각종 내과적 질환 치료, 미용, 예방, 생활섭생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어떤 분야는 꼭 의자가 독점적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 유전학에서는 의자보다는 생화학전문가가 분자생물학자들이
기초를 제공하고 의자는 그 기초를 바탕으로 기술자적인 지위를 갖고
있고 미용이나 예방 생활섭생등은 의자가 기초를 제공하고 나머지
관련업자들이 기술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즉 현대의 의료는 단순히 치료의 범위를 넘어서 생명활동의 조작이
가능한 범위로 확대된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학문이나 기술이 생명에
대한 것을 전부 이해한 것은 결코 아니다. 크게보면 실제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질병의 치료에서는 의외로 큰 차이가 없다.
서론이 너무 길어지니 조금 단축하고자 한다.
2. 생명의학(Lifecaring Medicine)과 기술의학(Technicshowing Medicine)
의란 무엇인지 원론으로 돌아가자. 한 생명이 태어나 이 우주에서
자신의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얼마나 공여하는
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한 생명의 연속성과 활동성에
기준을 둔 것을 진정한 의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개념에 근거한
의학을 생명의학(Lifecaring Medicine)이라고 용어를 붙이고자 한다.
이에 대비하여 의학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성의 확장을 위한 치료가
아닌 생명성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주는 기술을 의학으로
포장하는 것을 기술의학(Technicshowing Medicine)이라고 용어를
붙이고자 한다.
생명의학에는 어떤 의료기술이 적용되는가?
예컨대 지금 사람이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면 나중에 죽게 될 것이다.
이 때는 얼른 지혈을 시켜야 하고 그리고 상처부위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온전히 보존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응용되는 기술은 외과적인 수술 관련되는 양약 그리고
회복을 위한 한약등이 있다.
또 산모가 당장 출혈이 멎지 않는다면 당연히 양방적인 조치를
해야한다. 또 있다. 지금 급성 전염병이 창궐한다면 그 응급예방은
양방이 뛰어나다. 그 외에도 어떤 이유로 선천적인 기형으로 생활에
현저한 지장을 주는 환자에게 적절한 수준의 정형외과적인 수술은
분명히 생명을 위한 치료이다. 양방에서는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방치료 역시 여기에 해당이 된다. 왜냐하면
한방치료는 한약의 약물이 어떤 병원균에 직접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자체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이다 한방치료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술의학이란 어떤 것인가?
의학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생명활동에 조작을 가하는 것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생명자체가 갖고 있는 생명성에 손상을 주는 의술을
말한다.
긴말이 필요없이 대표적으로 미용을 위한 성형의술이다. 단언에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크게 보면 거의 전부가 그렇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 그리고 양의사들도 인정하지
않는 수술이 있다. 즉 만성질환에 수술하는 시술이다.
예컨대 비염 코골이 디스크 수술등이다. 이러한 수술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수술은 나중에 생명성에 지장을
주거나 더욱 심각한 병증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된다.
다음은 암에 대한 수술이다. 이 부분은 논란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암을
수술한다고 암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암으로 인한 병증을 잠시 유예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일 암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 때
암을 수술한 경우와 어떤 점이 더 환자한테 좋은 것일가하는 점은 분명히
논의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생존율을 냉정히 검사해보면 암에 대한
조기검진이나 조기수술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그만 암이 생겼다고 조기검진하여 제거하면
다음에는 더 불리한 장소에 더욱 빠른 속도로 암종이 자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술을 안하고 다른 방법 즉 한약치료로 해도 충분히 생존률을
수술보다는 더 연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수술에 관한한은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다음은 만성질환의 대표적인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중풍등에 대한
양약투여다. 긴말을 하자면 끝이 없다. 이것들이 치료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지 다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입받기를 이런 약을 안먹으면 곧
죽을 줄 알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자가면역성 피부질환이나 내과질환에 홀몬제류를
투여하는 것도 정말 문제다. 일일히 말하자면 너무 길어서 여기서
그친다.
마지막으로 한방치료는 어떨까? 여기서도 그런 예는 많다. 간단히
한 예를 든다면 오장의 병(소생병)을 경락의 병(시동병)과 구별하지
못하여 등이 아프다고 계속 침구혹은 부항으로 외과적인 치료를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당장은 등이 안아프니 좋다고 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오장에 병이 깊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다. 이 역시
생명성에 손상을 주는 기술이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약을 쓰는데
있어서도 눈 앞에 증상을 가라앉혀 주기 위해서 더 심한 후유증을
남기는 투약행위이다. 이런 경우느 대부분이 한의사의 내공이
부족하여 생기는 것으로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생명의학과 기술의학과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 부분은 전문가 영역이고 동시에 생에 관하여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의료수요자들의 의식도 문제다. 많은 성형수요자들은
그들의 선택이 생명성에 위협이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한다.
3. 산업자본가들이 지원하는 의학이란?
우리 입장에서 의료업계의 흐름을 보는 것은 생명철학을 바탕으로
하되 구체적인 현실을 볼 때는 양의학과 한의학을 대비해서 보면
쉽게 현실이 보인다.
양의학은 근대에서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먼저 보자.(실제로
한의학도 외과부분에서는 여기에 해당한다).
서구는 근대에 오면서 많은 전쟁을 한다. 전재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익집단이 있고 그 이익집단은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은 돈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양의학은 전쟁을 통하여 전투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요구에 응하여 발달한다. 그러다 보니 외과 위주로
발달하게 된다. 단순히 외과라해서 수술기술뿐만이 아니다.
바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화학약이 필요했다.
따라서 의학이 사람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외과기술과
화학약을 위주로 발달하게 된다. 그건 아직도 그렇다. 예컨대
사람이 아프면 왜 아픈지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에 앞서 우선 당장에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떤 직접적인 인자를 발경하여 그 인자를
없애주는 화학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를 중심으로 어떤
치료방법이 최선일까 라기 보다는 어떤 병에 어떤 약이 몇 프로의
효과가 있다라는 식이다. 이건 아직도 그렇다.
즉 병이 있으면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병증자체를 본다.
전쟁에는 이런 접근방법이 사회적인 효과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한테는 이런 확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의료는 국가에서 산업자본가로 그 행사 주역이
바뀌게 되었다. 산업자본가는 입장에서는 의사 개개인의 기술은 실제로
수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별로 관심이 없다. 오직 대단위로
제품을 팔 수 있는 약재나 혹은 의료기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의료업을 지배하는 지배구조를 서서히 갖추게 된다.
이말은 외과적인 수술등은 의사 개인의 밥벌이나 혹은 병원급의 사업이고
약제를 상품화하여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것은 산업자본가의 사업이란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의료사업은 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만성질환에 약제를
투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란 말이다.
예컨대 암이 있다고 치자. 어느날 암을 치료하는 신비한 약이 개발되었다고
하면 그 때부터는 산업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암은 더 이상의 건데기가
없는 수익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산업자본가 그 다음에 어떤 생각을 할까?
암 진단 방법을 여러가지로 개발한다. 진단의 진위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암예방을 위한 약물 투여를 모든 사람한테 권유한다. 물론 이 때
모집책으로 양의사들을 활용할 것이다. 이런 예측이 허무맹랑할까?
아니다. 아스피린이 나올 때 부작용으로 출혈이 잘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출혈이 잘된다는 것은 피떡이 안생기게 한다는 것이니
당연히 혈전용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을 만들어낸다. 과연
그런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처음 그런 주장은 한게
아니고 아스피린을 새롭게 더오르는 중풍에 겨냥하여 죽어가는 아스피린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논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회사의 설명을
듣고 의사들은 광분한다. 그들 가운데 자신이 피라밋 하부구조의 삐끼라고
생각하는 양의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추론이 잘 못된 것일까?
언제가 탄 음식을 먹으면 암걸린다고 온통 대중매체에서 떠든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고기가 떠오른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삶아 먹는 곳은
드물다. 대부분이 구워먹는다 당연히 탄다. 결국 이 말은 소세지난 햄만
먹으러난 말이 된다. 그런데 여기 양의사들이 얼마나 광분했는가?
심지어 여설픈 교양녀들은 누릉지도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탄음식인 커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이 없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닌가? 발암물질이 안들어 있는 음식을
찾아보면 안들어 있는 음식도 없고 항암물질 이 안들어 있는 음식도 없다.
아니 그전에 서울 공기 자체가 발암물질로 가득 차 있다. 다시 이야기를
아스피린으로 돌리면 아스피린이 출혈을 야기하니 당연히 아스피린을
먹으면 중풍걸린다고 이야기 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양의사도 대중 앞에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중풍예방약이라고 시골노인들
한테 지금도 얼마나 많이 먹이고 있는가? 아마 실태를 조사하면 심각할
정도이다. 이에 비하면 광우병의 확률은( 그말이 진실이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미친 소 사태는 다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이들에 의해 이끌려가는 병증들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고혈압 당뇨 중풍 암 에이즈 모든 자가면역질환 그외 증후군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모든 병증등일 것이다.
둘째 성장 머리좋아지는 약 갑자기 힘이 세지는 약 정력제 피부미용제
등등 각종 건강기능식포함.
셋째 유전자 조작을 통한 염색 피부 약등이 있을 것이다. 대충 생각한
것이다. 모두 대량소비가 가능하고 수요가 지속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가 기술의학이다. 전체적인 생명에는 손상을 주는
그런 눈속임기술들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4. 생명의학은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오늘날 생명의학은 대부분의 한의학과 일부의 양의학이 당담할 수 밖에
없다. 생명의학자의 입장에서는 개인별 맟춤치료를 주장해야 하는데
위에서 말한 산업자본가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매트릭스에 반항할 수
있는 힘이 있을지 의문이다. 산업자본가들이 가장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는 질환에 대하여 한의학은 그 치료효과나 예방에 있어서 진실로
탁월하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렇다고 한의학이 최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이 있고 가장 중요한 비용과 한의사 개별 능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한의학도나 아니면 생명학자들은 고민해야
한다.
III편 생명관과 의학 그리고 미래 한의학으로 이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