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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신 칼럼 15차 - 노래의 한방 생리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2. 3. 27. 16:55

 


가수에 등수를 매기는 방송프로가 유행한지가 좀 된 것 같다. 노래란 감성의 표현인데 감성에 순서를 둘 수 없으므로 그런 프로에서 순서를 매기는 관점은 아마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가수가 소리로 표현하는 기술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인네에 속하는 필자는 일등 가는 가수가 잘한다고 생각은 들어도 같이 듣고 있는 집식구들과는 달리 그 노래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흔히 음악은 범세계적이라고 말하는데 같은 식구이면서도 이렇게 느낌이 개인에 따라 다른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똑같은 흰밥을 먹어도 똥은 사람마다 다르듯이 개별생리의 다양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래는 듣는 사람의 숨겨진 감성을 저절로 발산되도록 해준다. 구체적으로 슬픈 노래의 예를 들어보자. 슬픔이란 기 흐름으로 보면 몸 안의 기운이 외부상황의 기에 완전히 막혀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지 못하는 감성이다. 그러나 기가 나가지 못하면 속이 썩어가므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에서 뭉친 기는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이때는 외부의 기가 상대적으로 강하여 밀어내는 힘이 모자라므로 공격적인 기발산은 될 수는 없고 마치 깨진 바가지 틈으로 물이 새듯이 그렇게 힘없이 흐르게 된다.  만일 슬픔으로 인한 기뭉침을 능동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울음이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걸러지고 걸러져 남이 들어도 기흐름에 부담이 없어지면 그 사람의 노래가 된다. 이런 과정을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 다시 걸러지면 민요가 된다. 따라서 슬픈 민요는 그 민족의 슬픈 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산하여 슬픔으로 인한 기막힘을 치료해주는 훌륭한 처방이 된다.
  
예부터 소리란 심이 주(主)이고 폐는 기(器)고 신이 근(根)라고 한다. 심이 주란 말은 소리 내는 목적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이란 뜻이고 폐가 기란 말은 소리기관의 작동기전을 뜻하고 신이 뿌리란 말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뜻한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도 한 사람의 소리만 들어도 목소리의 힘 울림 말소리의 속도 발음의 명확성 그리고 전달되는 감성을 통하여 그 사람의 오장의 기운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방의 사진가운데 문진(聞診)은 단순히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전체적인 에너지 흐름을 판단하는 음진(音診)도 들어있는 것이다. 나아가 필자는 여기에 생물이라면 반드시 소리를 내어야 하는 또 다른 생리적 이유를 덧붙이고자 한다.

소리란 정(精)이 기화되는 울림이다. 밖으로는 우주를 향한 울림이지만 안으로는 육체의 작은 세포들을 깨닫게 해주는 울림이다. 즉 기의 승강출입은 인체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행해져야 하는데 단순히 생화화학적 반응만으로는 운동이 모자란다. 특히 오장 가운데 비간신은 심폐와 달리 자율적인 운동성이 많이 떨어진다. 비간신을 운동해주기 위해서는 사지운동을 통해서 출렁거리게 해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세포들한테는 큰 출렁거림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구운동이 그 안에 있는 인체한데는 운동효과를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주 작은 세포들한테는 그에 맞는 작은 울림이 필요하다. 그 작은 울림을 바로 소리가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 몸에 맞게 걸러진 소리는 몸의 조화를 흩뜨리지 않는다. 따라서 한 민족의 민요라도 모든 사람이 같은 음색을 낼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의 오장의 균형에 맞게 읊조리면 그것이 자신에게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예컨대 끙끙 앓는 소리는 노래와는 반대되는 감성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끙' 하는 소리는 신기(腎氣)를 추동하는 소리로 스스로 정기를 이끌어내어 아픔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것과 같이 몸 상태에 따라 노래 소리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민족에 고유의 민요가 있듯이 모든 종교에는 집단의식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 종교의 고유한 주문 (이나 염불 노래 기도소리)등 공통된 소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천기와 지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마음의 평정은 절대적인 평정이 아니라 기의 고른 흐름을 뜻하는 동적인 평정을 뜻하기 때문에 기가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균형을 잡아주는 소리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에 종교적인 가르침을 융합한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읽다보면 생리적으로 부담이 극소화되는 낭송방법이 저절로 개발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종교의 고유한 주문이 된다. 따라서 역으로 한 종교의 주문소리를 들어보면 그 종교의 기흐름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감성은 생기는 것이고 이 감성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 불노장생하는 길이다. 만일 이 감성을 스스로 억제하면 기운은 안에서 뭉쳐 나중에는 바위(암)가 되고 이 바위는 또 다시 길을 막게 된다. 따라서 불노장생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감성이 솟아오르면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화내고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기가 탈진되지 않도록 가끔은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조율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