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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 관련된 신기한 이야기 - 금기는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4. 11. 17. 17:54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미신을 찬양하는 것 같아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상당히 불쾌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의 현상이 모두 물질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세상의 모든 현상은 -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은 오로지 한 분의 하나님(여기서는 인격신을 말함)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물론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세상의 현상은 때로는 상식을 넘어가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고 또한 그 반대의 입장, 즉 모든 신비한 현상은 하나님만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사람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음의 이야기가 그렇게 껄그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한편으론 열어두고 그러려니 하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활에서는 사회적인 금기라는 것이 많습니다. 금기는 여느 문화에도 있습니다. 때로는 한 문화에서는 금기이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금기가 전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관한 금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금기와 관련하여 가장 예민한 부분은 역시 생명과 관련한 임신과 출산에 관한 금기가 가장 많습니다. 다른 문화에서의 구체적인 금기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으로 미루어보면 임신 출산 혹은 어린아이와 관련된 금기가 다른 분야에 대한 금기보다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필자의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실입니다. 사례를 들어 먼저 이야기하고 뒤에 그런 사실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1. 출산과 관련한 신비한 사건

사례 1
한 이웃의 이야기 입니다.
조카인가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얼굴의 피부에 마치 종이에 못을 찌르고 나서 다시 그 못을 빼면 그 종이 위에 조그만 구멍과 그 조그만 구멍을 중심으로 주위로 종이가 찢겨진 선이 나타나는 모양이 가득히 나타났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 얼굴에 그런 여드름 짜낸 자국 비슷한 것들이 있으니 간호사들이 깜작 놀라서 아이와 산모를 버려두고 병실에서 도망나가듯이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담당 의사를 당연히 찾아갔었나 봅니다.

담당의사도 매우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 애기 아빠를 부르더니 솔찍하게 말하라고 하더랍니다. 애기 아빠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었는데 알고보니 아기가 그런 것은 선천성매독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애기 아빠는 결백하다고 하니 병원에서는 아기의 증상이 선천성 뭐뭐라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입원치료를 권하는 상태였구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외할머니는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어 그날부터 무조건 기도만 했다고 합니다. 사흘 후에는 아기의 피부는 아주 깨끗해진 상태로 퇴원하였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핵심은 외할머니의 언뜻 스쳐간 생각이 되겠네요. 왜냐하면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던 외할머니게서 갑자기 기도를 그리 열심히 한 이유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연은 이랬습니다. 딸이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 할 것을 대비해서 출산일 전날 딸이 묵을 방의 벽에 외할아버지를 시켜 몇 개의 못을 여기저기 박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의 얼굴에 마치 못을 박았다 뺀 자국이란 말을 식구들한테 듣고는 외할머니는 바로 못 생각이 난것입니다. 즉 그 방에 못박은 것이 아기의 출생에 부정을 타게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러다보니 아기의 그런 증상이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되어 그리 열심히 기도를 했다고 한 것입니다.(기도의 대상은 특정한 신은 아니었고 그냥 그 방의 있는 지신(地神)들한테 했나봅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어찌 되었든 아기는 태어나면서 얼굴에 뭔가 있었는데 그런 증상에 대해 병원은 놀라서 소동을 벌였고 그리고 외할머니는 기도를 해서 그 소동과 아기 부모의 걱정을 없애 준 것입니다.

사례 2

이 번 사례는 필자의 친인척의 사례입니다.
주인공은 지금은 30대 중반으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 당시 태어났을 때 한바탕 소동을 벌인 지금도 생생한 일입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기가 온 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오징어 다리처럼 다리가 꼬이고 팔은 힘없이 축축 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과 몸체도 흐느적거렸구요. 병원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구요. 담당의사는 유전자 결손으로 뭔가 잘못된 출생이라고 생각했던지 부모한테 그렇게 말했고 부모는 당연히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두고자 그냥 엎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죽지도 않어 할 수 없이 젖은 먹였는데 그래도 온 사지에 힘이 없어 축축 늘어지기만 했다고 합니다.  

아기를 데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기의 친할머니께서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접하고는 걱정말라고 하시더니 아기를 병원에 내버려두지 말고 그냥 집으로 데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간 계속 기도만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자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관련되는 기이한 사연은 이랬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외할아버지는 부산에 여행 중이었는데 마침 다음날 아기가 태어난다는 얘길 듣고는 축하하는 뜻에서 싱싱한 문어회와 고기로 일행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결국 싱싱한 문어회가 부정을 탔다고 생각되었고 희한하게도 태어난 외손자가 그렇게 문어다리처럼 축축 늘어져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이 아이는 자라면서 어찌된 일인지 우유는 먹는데도 불구하고 육류나 생선류는 일체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어 군에 다녀오면서 밥상머리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지금은 육류나 생선을 입에 대기는 하는데 그러나 아직도 억지로 먹는 편입니다.

2. 금기에 대하여

1) 영혼백과 육체 그리고 인연

필자의 책 " 밥상위의 한의학 " 에서 영혼백은 정신의 깊이에 다른 단계로 구분하고 그 깊이에 따라 육체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영이란 인류 공통적인 정신단계로 가장 깊고( 본질, 즉 하나님보다는 얕은 단계이지만) 혼은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주는 단계의 정신으로 이것이 윤회라는 환상을 일으키고 그리고 백은 육체에 성격에 매여 있어 개성을 나타내주지는 않아 윤회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육체 고유의 본능적인 활동을 지배하는 정신단계로 가장 얕은 단계로 분류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에는 사람마다 공유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이것을 흔한 말로 핏줄이라고 합니다. 즉 핏줄을 통하여 공유한 부분에서는 그 피에 담겨 있는 영혼백의 일부가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핏줄에서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아무리 자녀가 멀리 있어도 그 먼거리에 자녀에게서 일어나는 감성의 변화에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응을 하게 됩니다. 감응하는 민감도는 얕은 단계의 감성이 아닌 보다 깊은 단계 혹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생명성에 영향을 주는 그런 감성의 변화에 자녀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죠. 에컨대 미국에 있는 자녀가 아주 힘든 상태에서 감성적인 변화를 격게 되면 서울에 있는 부모도 왠일인지 비슷한 감성적인 변화를 갖게 됩니다. 결국 부모와 자식간에는 아무리 공간적으로 덜어져 있어도 감성의 일부를 - 사실은 실질적인 존재감의 일부 - 공유하는 것입니다. 물론 촌수가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이런 감성의 두게는 얇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영혼의 감성이 흘러가는 중에 시간과 공간에 맞추어 교차가 일어날 경우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인연에 따라 개체의 감성이 방향을 틀어 같이 가는 경우는 현실에서 많이 보기도 합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언행에 따라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인연이 닿는 모든 사람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2) 문화적인 흐름에서의 금기

한 문화권에서 금기란 그 과학적인 논리성 여부를 떠나 그 구성원 전체의 마음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기는 오랜 시간을 두고 감성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그런 감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금기를 어겼을 경우에 마음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주로 두려움 불안 등입니다. 만일 그런 감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뿌리에서부터 그런 감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런 금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 금기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용기와 논리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머리로는 부정하지만 그러나 머리로 부정하는 논리는 아직은 깊은 감성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여 실제적으로는 부정하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서 들어온 종교에 심취를 해도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 자신들의 고유한 종교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컨데 남미의 카톨릭과 고유종교의 혼합형태가 바로 그런 것이지요. 즉 남미 사람들한테는 대부분이 그들 고유의 믿음이 깊은 곳에서 작용하고 있고 카톨릭은 표면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불교나 유교나 카롤릭이나 개신교이거나 모두 하나같이 점이나 무당을 경원시하면서도 살다 다급하면 점집을 찾아가는 일은 너무도 흔합니다. 그 만큼 정서적으로는 우리도 우리 핏 속에 흐르는 감성이 지배적이란 뜻입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가 태어나는 아기에(아직 자아가 뚜렷하지 않아 주위의 인연있는 사람들의 감성에 의해 반응하기 쉬운 상태의) 핏줄로 연결된 사람들의 감성이 아기의 혼백에 영향을 준 건들입니다.

옛날부터 이런 금기는 바로 이런 영향을 피하려는 경험에서 생긴 것들입니다. 즉 금기의 내용은 인연있는 사람들이 격한 감성을 갖지 않아 아기의 감성을 흐뜨려 지지 않도록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조상들은 임신과 출산시에는 사람들의 접촉을 최대한 금한 것입니다. .

3) 위의 사례에 대한 선의학적인 해설

만일 위의 증상들이 오장의 장애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정병이라면) 기도로도 치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산일 즈음하여 생겨난 감성의 공유로 표현된 것이라면 아직은 깊은 단계의 병증이 아니고 일시적일 것이므로 기도로 치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란 그 대상이야 어찌 되었든 인연있는 사람들의 감성을 바로해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므로)

물론 병증의 뿌리가 얕다는 것은 오장의 기운을 조금만 북돋우어 주면 의료적으로도 치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즉 탕약처방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주로 간과 심장을 보해주는 처방이라면 아이의 감성을 충분히 보호했을 것이므로 바로 치료가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만일 이런 내용을 모르고 양방병원에서 선천성 기형 혹은 선천성 난치성 증상으로 생각해서 이를 치료하고자 스테로이드나 기타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아기는 간허와 심허는 더욱 심해져 진짜로 난치성 병증으로 발전될 것입니다.

위의 두 사례에서 탕약치료보다는 인연있는 사람들의 기도로 치료했다는 것이 더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탕약치료를 했다면 오히려 치료는 더 쉬울지도 모르겠으나 인연있는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정서적 교감이 사람의 삶에 더욱 중요한 것은 기회가 있을 때 다시 한번 글을 올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사례에서는 벽에 못 박는 마음에 옹이가 들어 있어다고 생각되고 문어회를 즐기면서 어린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연체느낌을 아이와 공유했을 것입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