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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잊고 사는 것들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4. 12. 8. 11:42
세상의 모든 걱정은 그 시작이 하루살이가 편안한 것이고 그 끝 역시 머나먼 미래에도(후손들까지도) 하루살이가 편안한 상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세상의 걱정을 없어지려면 하루살이가 편하다는 것을 인식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살이가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불평등에서 오는 박탈감이나 탐욕자들에 의해 생기는 부자유때문입니다. 불평등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탐욕자들 역시 자신들이 그렇게 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하루살이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어떤 기회나 힘을 이용하여 하루살이를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불평등과 부자유를 남한테 강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크게보면 결국 세상의 불행은 세상사람들의 서로간의 오해 - 즉 자기가 살기위해 남을 해할 것이라는, 그래서 자신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할 수 밖에 없다는 - 에서 생긴다고 단순화시킬 수가 있겠습니다. 옛부터 내려오는 수 많은 철학적 사유나 사회적 문제의 관점은 아무리 그 논리가 어렵고 다양해도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그 삶의 조건을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 나아가 우리의 감성을 좀 더 본질적인 면에 가깝게 가보자는 의도입니다. 예컨데 나뭇잎이 반대편 나무잎을 이해하려면 보다 큰 줄기에 가깝게 내려가야 반대편 나뭇잎에 갈 수 있듯이 우리가 다른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항상 본질에 가깝게 가야 지금과 다른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늘 서두가 긴 이유는 항상 본질을 먼저 보자는 뜻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사회적인 관계나 소유에 대한 생각과 행위로 가득차 있어 정작 하루살이를 조건들을 늘 잊는다는 것입니다. 그 하루살이 조건이라는 것은 밥먹고 자고 옷입고 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숨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밥은 한 끼를 굶어도 살 수 있고 잠은 몇 일 정도는 참을 수 있고 옷은 벗고 있어도 당장은 살 수 있습니다만 숨은 잠시라도 끊기면 바로 세포의 활동은 정지되고 몸 전체로는 숨을 오 분이상 지속되면 몸 전체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숨 쉬는 것이 무엇보다 보다 생존의 본질적인 조건이 됩니다. 그러면 숨쉬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공기가 있어야하고 (공기는 자연이 줍니다.) 둘째는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 역시 자연이 시작해 줍니다.) 공기도 그렇고 자신이 생명체를 갖게 하는 것 역시 자연이 시작해주는 것이니 자, 이제 시선을 숨쉬는 주체자가 자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다 시공적으로 큰 지구나 우주 혹은 자연이라는 존재로 옮겨봅시다. 그러면 실제로 숨을 쉬는 존재는 자신이 아니라 자연이고 자신은 그 숨쉬는 하나의 작은 세포로 인식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자신은 이제까지 자연을 이용하여 스스로 숨을 쉬고 스스로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주체자를 자신의 본질인 자연으로 옮겨 생각하니 자신은 자연이 빚어놓은 무수한 존재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고 자신이 죽든 말든 자연은 여전히 다른 존재를 이용하여 숨을 쉴 것이고 또한 자연은 자연의 의지대로 계속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면 졸지에 자신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 사회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 자신이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마치 피부에 벗겨지는 한 조각의 때에 불과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이런 감성은 자신이 지금까지 가져온 생각 감성 인연 환경 등이 낯설게 느껴지게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이루어놓은 이런 자연적 사회적 조건들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저 자연이 자신한테 잠시 빌려준 것을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죠. 쉽게 말해 머슴이 주인으로 착각했던 것이죠. 아마 좀 자신이 황당해 질 것입니다. 자, 이제 이런 감정을 익숙하도록 연습해 봅시다. 막상 이런 연습에 익숙해지면 질 수록 자신이 자연 앞에 처량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의 자신은 현재의 사회속의 자신이 아닌 바로 자연이라는 감성이 스며들 것입니다. 그런 감성이 왜 필요하냐구요? 이에 대한 답은 말로 표현하기 그렇고 직접 경험해 보아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선의학 생리나 병리와 관련하여 근시안적이고 실리적인 면, 하나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런 시각에 익숙해지면 사람의 삶이 보이고 또한 사람의 생리와 병리가 보인다. 라구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