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약기간과 몸의 변화는 늘 정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보는 만물의 형상에서 아주 단순한 것을 인지해 봅시다.
하나의 사물이 어떤 형상을 갖게되면 그 사물과 주위의 공간을 경계짓는 선이 생깁니다.
그런데 자연물의 경우에는 그 선이 언제나 구불구불합니다. 즉 직선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구조물에서는 직선이 많습니다. 예컨대 산을 보면 직선이 없으나 건물이나 자동차는 직선이나 매끈한 곡선이 보입니다. 따라서 어떤 형상이 인공구조물인지 아닌지는 선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을 자연이 창조할 때는 무수한 공간요소와 시간요소를 고려하다 보니 불규칙한 곡선이 되고 인공 형상은 창조할 때 고려되는 요소가 적고 그리고 경제적인 요소와 노동의 요소를 고려하고 그리고 제한된 환경에서의 효율성을 고려하다 보니 경계선이 직선이나 혹은 매끈한 곡선이 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선은 공간의 구분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 예컨대 사람이라면 사회현상 - 에서도 역시 적용됩니다. 즉 어떤 사회적 현상의 변화를 선으로 그어보면 직선이나 매끈한 곡선은 나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성적이 저조한 한 학생이 마음을 다잡아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 학생이 하루 24시간 씩 한 달 내내 공부한다고 해서 그 결과물인 성적의 오름이 바로 어떤 직선적인 선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듯이 그 학생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성적이 확 뛰었다가 다시 조금 내려오고... 이런 유형을 반복하면서 성적이 오르게 됩니다. 흔히 성적이 오를 때는 계단 식으로 오른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적용됩니다. 늘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 놀기 시작하면 바로 성적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 동안은 그런대로 버티어 주다가 언젠가부터 갑자가 한 단계 팍 떨어지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또 옆으로 가다가 어느 날 부터 다시 팍 떨어지게 됩니다. 즉 계단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성적이 오를 때도 일시적으로는 떨어지기도 하고 성적이 내릴 때도 일시적으로는 성적이 오를 수는 있습니다. 이 처럼 사람의 일도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굴곡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지금 본론에 이르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너무도 본질적인 현상을 무시하고 감각적으로 자극이 가는 내용에 숙달되었기에 이에 대한 쏠림을 피해보자는 마음을 갖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오랜 지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치료를 시작하면 당장에 어떤 호전을 기대하는 마음이 오히려 치료를 더디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에 대한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병증에 관한 정보도 많아 나름대로 이해도가 높고 또한 그러기 때문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대를 합니다. 왜냐하면 기간이 길어질수록 복약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무엇보다고 경제적인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합리적인 기대란 복약을 조금이라도 하면 적어도 그 정도에 비례해서 병증이 호전될 거란 것입니다. 그 작은 변화를 확인하면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헛수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그런 기대는 결코 합리적인 기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책상위에 책을 움직이려면 적어도 일정한 힘을 가해야 하는데 그 이하의 힘을 가하면 비록 오랫동안 힘을 가해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힘이 가해져서 그 책이 움직이게 될거란 생각은 비합리적인 것과 같습니다. 같은 이치로 몸의 변화를 주려면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비록 치료를 위한 정성이 강하고 오래가도 결과는 없습니다.
만성질환자들 가운데 자신이 온갖 치료를 다해보고 또한 온갖 병원을 다 다녀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경향이 높습니다.
늘 임상경험하는 일입니다만, 어떤 경우는 복약과 동시에 몸에 변화가 오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두세달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어느 한 순간에 변화가 오기도 합니다. 즉 치료도 내공이 쌓여야 그 호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면 보통 만성적인 병증을 갖게 되면 혀가 커지게 됩니다. 이유는 심장이 만성적인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과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이 변하기 시작하면 혀가 줄어들게 되는데 복약함과 동시에 혀가 조금 씩 줄어든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경우도 흔합니다만 그러나 만성이 될 정도로 뿌리가 깊으면 그렇지 못합니다.) 두 세달 복약 후에 어느날 갑자기 혀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즉 그 동안 내공이 쌓여서 이제는 변화를 시킬 만한 여유가 생기니까 그렇게 몸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혀가 작아졌다는 것은 병증이 호전되었다는 뜻입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한번은 홍반이라고 불리우는 여드름모양의 피부증상으로 오신 분이 치료를 원하셨는데 그 날이 마침 주말이라 탕약을 그 다음주 화요일에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큰일 났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 큰일이란 것이 일요일 하루 사이에 전신 곳곳에 홍반이 쫙 퍼졌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내온 것을 보니 그야말로 하루사이에 온 몸에 여드름이 난 것이 기적같습니다. 그래서 만일 제가 탕약을 하루 일찍 드려서 한 봉을 드시고 난 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분명히 탕약이 잘 못되어 이렇게 되엇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고 답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전에 당장이라도 홍반이 전신에 퍼질 수 있다고 두 차례 정도를 미리 말해주었었습니다. 왜냐하면 병리가 그랬고 또한 그 분의 음식섭생이 그래서 그런 과감한 예측을 해주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 분은 필자의 예측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 분과 동반하신 다른 분이 필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동반자 덕에그 분의 믿음을 더 확실하게 받았고 약 2달 정도의 치료로 깨끗하게 치료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도록 재발은 없었는데 만일 음식섭생이 게을러지면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니 이게 옳다 저게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치료를 다 해보았다는 분들은 그 만큼 자신의 병리에 대해서 의자나 혹은 사이비 의자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니 그 병리해설이 합리적인지 아니면 비합리적인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한 번에 결과호전을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임계선을 넘어갈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학생이 몇 년을 놀다가 한 두 달 학원다니면 일류대에 갈 것이라고 믿는 학부형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