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역사
세상살이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흔하게 눈에 들어오는 대상은 사람이고 또한 동시에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혹은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고 또한 감성적입니다. 주관적이고 감성적이라고 해서 생활에서는 서로가 불편하게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라는 테두리가 생각의 확장을 막아줍니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것의 변화가 빠른 시대이니 구태여 생각하지 않아도 몸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왔던 감성도 시대에 맞게 조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커서 아무리 말을 해도 결국은 부분에 지나지 않겠지만 필자 나름대로 본질적인 면을 들추어 내면 많은 말들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십여 년 전에 쓴 글을 다시 한번 링크해 봅니다.
여자가 강할까요? 남자가 강할까요?
http://www.harabiclinic.com/list/view.php?id=freeboard&page=4&sn1=&divpage=1&sn=on&ss=on&sc=on&keyword=남자&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2
우리가 남자냐 여자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파악이 기존의 각자한테 세뇌된 감성으로 접근하다 보니 왠지 생명내지는 우주 자체에 대한 존엄함을 가벼이 보게 되는 우를 범하는게 아닐까 해서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감성 내지는 존재의 의미를 정리해보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은 시간과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둘로 나누어 인식하는 방법을 음양(陰陽)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연못에 물이 고여 있는 상태를 음양으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과 고여있는 물을 비교하게 되면 거기에는 변화가 생기니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여있는 상태는 음이 되고 흐르는 상태는 양이 됩니다.
같은 이치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면 ( 물론 그런 구분을 하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 가장 본질적인 구분은 역시 음양입니다. 즉 활동성이 강하면 남자이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니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활동성이 약하면 여자입니다.
그런데 우주는 음과 양 하나만이 존재할 수는 없고 반드시 음양은 동시에 존재하면서 활동의 상태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래야 만물이 유지해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남자만 있을 수도 없고 여자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만일 세상의 모든 여자가 다 죽고 남자만 남아 있는 현실이 왔다면 사람은 소멸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에서는 남자들 가운데 소극적인( 이게 활동성이 소극적이란 말이 아니고 다음에 말하는 현상을 유지시키는 경향이 강한 )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여자로 변신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부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자연은 그런 경우에 일부의 남자들의 염색체의 변화를 일으켜서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여자로 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음양이 사람한테 나타나는 구체화가 바로 남과 여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은 양적(陽的)이고 여는 음적(陰的)입니다. 그러면 양과 음이 세상살이 - 남녀가 살아가는 - 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 부분을 음양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하기보다는 비유가로 설명하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주위에 있는 아무 나무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줄기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줄기는( 음 ) 한번 굳어지면 움직임에 한계가 있지만 잎은( 양 ) 어떤 줄기에서 나든 햇볕을 향합니다.
나무는 주위의 모든 환경의 변화를 인지한 다음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줄기순을 냅니다. 그리고 점점 더 커지고 굳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여자의 속성입니다. 즉 여자는 음적이라 이미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여 생명을 유지시키려 합니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보다 모험심이 적습니다. 대신 줄기가 나무의 미래를 만들어가듯이 여자는 집안, 멀리 나아가면 나라의 미래를 구조화시켜 갑니다.
잎은 어느 줄기에 나든 유연성을 발휘하여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줄기에 어느 방향이 더 많은 빛을 준다는 정보를 끊임없이 줄기에 보내줍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의 현신하는 기간은 짧아도 더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끔 줄기를 추동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지가 줄기에 확신을 주게 되면 줄기는 잎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줄기에서 방향이 좀 새로운 다른 줄기를 내게 됩니다. 바로 이 잎의 속성이 남자의 속성입니다. 양적인 남자의 속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존재의 안정성이 입증된 방향이라고 여자가 확신이 서면 드디어 여자도 남자가 이루어낸 방향으로 새로운 감성을 만들어 냅니다. 즉 집안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겉보기에는 남자의 활동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감성의 깊이를 보면 여자가 남자가 만들어주는 분위기에 확신을 가질 때야 비로소 새로운 줄기를 내듯이 집안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남자는 앞에 나가서 무언가 찾아내어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소모품과 같고 여자는 남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본체 같습니다. 이것이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가 남자들의 활동에서 이루어진다고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권력을 남자들이 쥐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구요. 그러나 줄기와 잎의 예에서 아무리 뛰어난 잎도 자신이 난 줄기에서의 한계는 어쩔 수 없듯이 남자들의 활동 역시 그 집안 그 사회의 여자들의 감성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여자들의 감성은 남자들을 활성화시키고 종종 목숨까지 걸도록 합니다. 그래서 마치 인류의 역사는 목숨도 걸게 되는 남자들의 모험심만 보게 되는 이유로 그 모험의 대가로 주어지는 남자들의 권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로 보면 실제로는 그런 남자들을 낳고 기른 여자들의 감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잎이 줄기에 잘못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주게 되면 그 줄기는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뻗게 됩니다. 같은 이치로 한 집단의 여자들의 공통된 감성이 부정적으로( 여기서는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발산되지 못하는 ) 굳어지게 되면 그 집단의 남자들 역시 밖으로 돌아다니며 살아갈 방향을 탐지하는 행위, 즉 좀 거시기한 말로 영업사원으로서 영업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이해를 위해 멀리 생각할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민족의 과거를 보면 바로 입증이 됩니다. 특히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약자에 대한 무시가 심해지면서( 이건 유학으로 인한 순치 그리고 왜와 청으로부터 당하는 모습이 일반화될 수 있다는 현실에서 학습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여자들의 욕망이 밖으로 기웃거리지도 못하게 되자 집안의 분위기는 그저 남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만 우리만,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현실에 순치하려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고 그리고 그 후손인 남자들도 역시 그러하게 됩니다. 즉 현실이 어려워지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장에 같은 식구를 죽여서라도 자기만 살겠다는 계모 같은 감성이 더욱 깊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웃나라인 중국을 보면( 대중매체를 통해서 ), 여자들이 대단합니다. 전혀 남자들한테 기죽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앞으로 더 강하고 더 강렬한 영업사원들이 나타나 열심히 자기들이 살아나갈 방향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중국의 활동이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문화가 비슷한 일본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여자들의 감성을 보면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일본의 남자들도 그렇게 쪼그려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국력 자체가 소멸될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줄기가 뻗지 못하니 그 줄기에서 나오는 잎 역시 약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한 마디 더 덧붙이면 이 나라 집안의 전통은 남자들의 성씨를 이어가니 겉보기에는 남자들 위주로 이어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심층을 들여다보면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가게 됩니다. 즉 모계로 이어간다는 것이죠. 외할머니에서 어머니에서 다시 딸로 그렇게 이어가게 되니 부계사회에서는 겉으로는 그런 감성의 흐름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고 남자의 성씨의 흔적만 보이게 됩니다. 물론 남자의 성씨로 이어지는 몇 가지 전통은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가겠지만 그것은 감성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니므로 그 집안의 남자들한테는 세상을 헤쳐가는 원초적인 추동력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드세기만 해서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자에서 여자한테 이어가는 감성을 진실로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감성을 억제만 하지 않는다면 마치 전자제품을 작은 힘으로 가동하는 것처럼 남자들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여자는 임신기간을 통하여 자신의 감성을 태아한테 끊임없이 이어가게 할 것이니 생물학적으로도 여자의 힘은 본질적이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마지막으로 여자들이 이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요즘 매체를 보면 그저 먹는 이야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몸매 가꾸기가 일상의 대부분인 듯한 사회분위기 입니다.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 일을 해야 하고 미모를 가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게 하는 데 소위 스스로 지식인연하는 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