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이 변하면 변고가 생기다는 말 - 그 생리적인 의미
옛말에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말이 아직도 내려온다는 말은 그 내용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는 바가 있어서 사람들의 집단의식 속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이 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추론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장맛은 우리의 감각입니다.
따라서 생리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맛이 변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된장이든 간장이든 고추장이든 장담글 때는 집안의 나이 든 어머니 혹은 할머니께서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객관화할 수 없는 경험이 필요하고 또한 집안 나름대로의 고유의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료를 모으고 첨가물을 넣고 발효시키고 마지막에 음식으로서 상에 내놓을 때까지 일일이 맛을 보고 냄새도 맡아가면 조절을 합니다.( 이것을 기미 즉 氣味를 맞춘다고 하는데 남도 지방에서는 이 한자말이 서민들한테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변형되어 계미 게미- 전라도 쪽인듯하고, 개미 - 경상도 쪽인 듯, 등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계미가 있다는 말은 맛이 특별나게 화려하다라는 뜻보다는 그냥 몸에 조화가 잘되어 알맞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장맛은 여자들을 통해서 내려오게 되므로 세월이 가도 집안마다 어느 정도 일정합니다.
그런데 장맛이 바뀌었다는 말은 이 내림에 변화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원인은 단순합니다.
종종 여자들의 내림에 변고가 생길 수가 있는데 이는 어떤 사고가 있었을 때이고
보통은 늙은 어머니 혹은 할머니께서 입맛을 잃어서 기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입맛을 잃는 것은 오장의 정기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는 결국 돌아가실 때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사례를 덧붙여봅니다.
장모님께서 요리를 아주 잘 하셨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아무리 사소한 간식이라도 항상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하셨기에 필자의 애들도 꼭 집에서 해주는 돈가스나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외식하는 경우도 맛있는 식단보다는 장모님께서 요리하시는 번거로움을 덜어서 쉬시게 하려는 목적이었지 별미를 찾고자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집사람이 이상하게 우리집 된장이 맛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집사람도 요리는 한식이든 양식이든 수준급이라 그냥 전문가들은 조금만 달라져도 아나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모님께서 승용차에 오르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유는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서였습니다. 장모님은 평소에 노인들한테 흔한 퇴행성질환은 없었는데 그날은 장모님께서는 다리에 힘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필자가 다리를 들어서 승용차에 태워드렸는데 그때야 비로소 필자의 눈에 장모님께서 늙으셨다는 것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장모님의 맥상의 변화가 생긴지는 이미 좀 되었지만 근거리 여행 정도는 불편한 바가 전혀 없었으므로 아직은 괜찮다 싶었었는데 막상 그런 일을 겪게 되니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냉정히 생각해보니 결코 오래갈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예상대로 그 일이 있고 나서 백 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딱 만 4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된장이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 집사람이 그 된장이 맛없다고 안 먹었던 바람에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죠. 시간이 가면 된장은 맛이 깊어진다는 말은 있지만 장모님 된장은 지금도 여전히 맛이 좀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집사람이 나름대로 된장에 변화를 주어 조금 맛이 살아나게 해서 들고는 있습니다.
옛말대로 집안의 장맛이 바뀌자 집안에 일이 생긴 것이지요.
당시는 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니 이런 생활에서의 예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늦었지만 말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는 일상에는 늘 일어나는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봅니다.
그러나 여유를 갖고 좀 더 주의 깊게 바라보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게는 생활의 편이에서 크게는 생명의 안전까지도요. 지금이라도 사무실 근처의 길거리에 서있는 나무나 그 아래의 땅을 살펴보면 많은 생명체들이 기운을 내뿜어주고 있다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기운인 것이죠. 바로 이런 자연의 기운이 뜻하는 지혜와 곁들여오는 기쁨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