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나 진통제는 통증을 잊게 해줍니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못 느끼게 해줄 뿐입니다. 현대의학의 백미라할 수 있는 응급수술은 바로 이 마취제와 진통제로 인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문제는 통증을 잊게해주는 편의성때문에 양의사나 환자들이 이런 약을 너무도 편하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마취제나 진통제를 생화학적인 면에서 해석하면 신경전달물질을 화학결합을 하거나 결합을 방해하여 그 통증의 신호가 뇌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증을 잊게 해주는 것이지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통증을 잊게 해주는 기전이 왜 치유를 더디게 하는 것일까요?
몸을 하나의 통합된 기전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적인 사고가 유용합니다. 그래서 신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기전을 한의학적인 면에서 이해해 봅시다.
그러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한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사회의 통신시스템에 비유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뇌는 한 사회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휘부에 해당하고 통증이 있는 부위는 사회의 한 부분에 해당합니다. 지금 숭례문에 불이 타고 있는데(통증) 이 불길이 바로 잡히지 않아서 당담 소방원이 보다 큰 소방지원을 받기 위해서 상부에 보고를 합니다. (통증을 뇌에 신호) 그런데 뇌는 지금 쉬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할 일도 많기도 해서 숭례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저 번거롭기만 합니다.( 통증이 불쾌하다고 느낌). 그래서 사람을 시켜 숭례문에서 오는 통신선을 잘라버리든지 아니면 무전기를 끄도록 지시합니다.(진통제나 마취제 투여). 그러자 지휘부는 편해지고 다른 부서 사람들도 TV에 불타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신경쓰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마취 내지는 진통효과).
그러나 여전히 숭례문에서는 불이 타고 있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숭례문 소방담당자는 우선 주위에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불을 끄려고 합니다. (치료가 늦어짐). 이 때 겨우 불길이 잡히면 다행인데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면 담당소방관은 비상 수단을 써서라도 지휘부에 다시 지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휘부나 사람들이 다시 시끄러워질 것입니다.(더 이상 마취제나 진통제가 듣지 않음. 즉 내성이 생김).
자 이것이 진통제 혹은 마취제의 기전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통신선이 차단되면 단순히 도와달라는 호소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조직의 유기성이 동시에 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마취제나 진통제로 인하여 통증신호가 차단되면 단순히 통증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치료에 필요한 모든 자원의 조달도 같이 끊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 것 때문에 마취제나 진통제가 치료를 더디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SPAN>b>
한편 통신이 차단되어 숭례문에 불난 줄을 모르는 다른 부서에서는 숭례문담당부서한테 다른 일을 시키거나 피로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불을 끄는데 집중할 수 없으므로 더욱 더딜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증신호가 차단되면 아픈지 모르니 생각없는 머리는 그 부위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지금 무릎의 인대가 늘어졌는데 진통제로 아프지 않게 만들어 놓으면 아픈지 모르니 그냥 무릎을 쓰게 되면 늘어진 인대는 이제는 찢어질 것입니다. 이것 역시 증상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이런 기전은 단순히 진통제나 마취제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에 작용하는 모든 양약들이 마찬가지 입니다. 예컨대 정신과약 역시 뇌신경을 마비시키는 기전이니 장기복용하면 점점 뇌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면 오장에서는 이때 대항하여 더욱 뇌로가는 기혈을 공급하니 오장 기능이 항진되어 병증은 점점 더 악화됩니다.
그렇다고 마취제나 진통제가 무익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니 양의사나 환자들도 이러한 기전을 늘 숙지하고 있다가 증상을 살펴서 신중하게 사용하라는 뜻에서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