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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식(仙食)의 유래와 목적 그리고 현대적인 응용

강남하라비한의원 2009. 7. 9. 13:44

선식(仙食)의 유래와 목적 그리고 현대적인 응용
어린 시절부터 옛 군협소설을( 정협지류의 무협지가 아니고 홍길동전 박씨전 임경업전 등의 도가적인 무인들의 이야기인데 오늘 날의 무협지의 원형적인 형태입니다. 군협소설의 시원은 고구려 연개소문과 당태종의 설화를 담은 풍진삼협이란 소설이고 이후에 수호전이나 삼국지연의 등이 뒤를 이어갑니다. 우리나라에는 근세조선시대에 왜란과 호란을 겪고나서 민중들 한테는 무능한 집권층대신 영웅을 기다리는 심리속에 이런 소설이 출현하게 됩니다.) 감명깊게 읽은 탓인지 도가나 선가의 이야기는 왠지 친근감이 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가나 선가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그 책 내용대로 수련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러한 수련은 분명히 일리는  있는데 전부가 아니기에 그저 추억과 애정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20년 전부터 유행한 선식(仙食)이 있습니다. 글자를 보면 마치 그런 음식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그렇게 해석하다 보면 선식에는 무언가 모르는 기운이 들어 있을 것만 같을 것입니다. 오늘날 선식이 과장되어 알려지기에 선식판매로 밥벌이를 하는 분들한테 미안한 감정을 뒤로하고 다음의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 음식과 한약이 갈라지게 된 배경

동아시아의 현인가운데 신농씨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한 개인인지 아니면 그런 농경사회를 이루어간 집단을 그렇게 개별화하여 이름을 붙인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둘 다 일 것 같습니다. 즉 신농은 고대 동아시아 문명을 만든 북방에서 온 지식인 그룹의 한 족장 쯤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농은 매일 여러가지 나무나 풀을 먹어보아서 사람이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가려내어 백성(그 당시로는 문명을 깨우치지 못한 황해 주변의 토착민들)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때는 지금처럼 쌀도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이니 모든 풀뿌리가 사람들의 음식이 되었을 때 입니다. 바로 이 때는 요즘에 쓰는 한약본초와 음식이 구분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좀 전분이 들어 있는 뿌리라면 모두가 훌륭한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착생활을하게 되면서 인구가 늘자 농경생산은 점점 늘어가게 되었고 주식이 벼나 콩 혹은 밀 보리 조 수수 등 오늘 날의 주식과 비슷해 지면서(물론 고기는 지금이나 그 때나 훌륭한 주식이었습니다.) 지금의 한약본초는 서서히 사람들한테 주식의 자리를 잃어갑니다.

오늘날의 한약본초가 주식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생산량이 적고(그래서 기미가 강하여 약재로서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 채취하기가 어렵고 셋째 기미가 강하여 특정한 본초만 많이 먹게 되면 설사를 하거나 변비가 생기곤 하여 소화에 부담을 주게되고 넷째 그 가운데 몇몇 본초는  혀에 자극이 강하여 먹기가 곤란한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 넷째는 일찍부터 환자들한테만 쓰였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류, 독충류, 반하류, 생강류 등일 것입니다.)

이런 본초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지식 속에 특정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억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효과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원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시대의 우주관에서 자연스럽게 연장되어 나온 기미론(氣味論) 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지식인 그룹에서 정리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는 당연히 평소에는 곡식류를 먹고 몸이 아플 때는 약재류를 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서 곡식류가 모자라면 역시 산이나 들에서 약재를 구황식품(救荒)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2. 선식(仙食)이 생기게 된 배경 I(본초)

신농시대나 흉년에 산이나 들에서 본초를 먹으면서 생명을 이어간 사람들은 꼭 곡식이 아니더라도 풀이나 나무뿌리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런 것은 현대까지 군사훈련 가운데 생존법으로 내려옵니다.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저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구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그 가운데 권력에서 밀려난 귀족들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면 깊은 산에 몸을 숨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갑니다. 그러다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어디 살고 뭘 먹고 사시는지. 동굴에 살고 먹고 사는 것은 예컨대 하수오를 먹고 산다고 답합니다.(하수오 역시 구황식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는 하수오만 먹었던게 아니고 근처에 다른 야채밭도 있었을 것이고 가끔 토끼 같은 것도 올무로 잡아 먹었을 것입니다.(만일 하수오만 계속 먹게 되면 그 부작용으로 설사를 계속하거나 비록 적응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영양이 불균형으로 병들게 됩니다.) 혼자 떨어져 사니 역에 시달리지도 않고 사회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나무꾼들의 찌든 얼굴의 부모님들과는 뭔가 달라보입니다. 또한 세상을 피해서 그런 곳으로 피해가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세상보는 눈이 다를 것이고 따라서 최소한 동네 사람들을 가르칠 만한 지식은 갖추었을 것입니다. 즉 귀족출신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원래 얼굴색도 좋았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그 노인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영원히 깨우치지 못할 것 같은 나무꾼들한테  비상시에 살아갈 수 있는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동네 사람들은 나무를 하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산에 있던 이야기를 주위에 합니다. 그러면서 그 노인은 신격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관가에까지 들어갑니다. 곧 관원들과 동네사람들은 그 사람을 찾으러 산에 다시 갑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미 사라진 다음입니다. 아마도 그 노인은 추적자를 따돌리기 위하여 나무꾼들이 내려가자마자 발빨리 튀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동네사람들 한테는 그 노인은 신선으로 각인되고 하수오는 신선들이 먹는 음식으로 전해내려옵니다.

아마도 모든 본초에 관한 전설이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3. 선식이 생기게 된 배경 II( 생식 혹은 미수가루)

이제 시대와 지역을 훨씬 밑으로 내려가 근세조선의 이야기를 해 봅시다.
근세조선은 사회경제적인 특징은 비생산 인구(양반)는 늘어가는데 그에 따라 생산량은 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양반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당대에 상민이나 천민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살기위해서 점점 천민 쪽으로 지위가 하락하게 됩니다. 천민에 가까울 수록 먹고 살기 힘드니 생존기간이 짧고 양반으로 갈 수록 잘먹고 생존기간이 깁니다. 오늘날 족보보면 대부분의 양반들의 후손들인 이유는 바로 이런 생물학적인 적자생존의 이치가 담겨있습니다. 양반성씨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족보위조라는 사회적인 이유보다도 훨씬 중요할 것입니다.

자, 뭣같은 세상이 더러워서 사회를 떠났든 꿀단지 같은 자리에서 밀려나서 사회를 떠났든 양반은 최소한 글은 알고 있었고 그리고 단군의 후예라면 고대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선가의 사상(물론 시대가 흐르면서 도가로 변질합니다만)을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를 떠난 양반이 당장 할일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산에 들어가 수련자로서 생을 마치고 대부분은 서서히 현실에 적응해가면서 생산자 계급으로 흡수되게 됩니다.

수련자로서 산으로 간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당장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모든 수련이 그렇듯이 도가의 수련 역시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듭니다. 그래서 도가적인 수련자들 가운데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학자로서 자신이 스스로 멀리했던 불가에 몸을 의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련은 도가적인 수련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래서 오늘 날 한국불교에 도가적인 수련법이 자연스럽게 섞여져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기저기 친인척들한테 밥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는 수련자들은 간단한 양식을 준비하여 산에 들어가 수련을 하기도 하고 수련을 빙자하여 현실의 울분을 잊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양식은 얻어도 밥해줄 사람까지 얻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윤선도 같은 분은 워낙 귀족이었고 특히 지위를 잃을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가솔을 데리고 보길도에 신선세계를 만들었습니다만 대부분은 가엾은 처자식들한테 쌀이나 콩가루 등을 몇되만 해달라고 해서 산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자 이제 도가의 수련자의 입장이 되어 봅시다. 일단 49일 기도 혹은 백일 기도 혹은 삼백일 기도 ... 이렇게 하려는데 양식이 없네요. 둘째 밥해줄 사람도 없네요. 셋째 마땅히 산에서 잘 곳도 만만하지 않은데 음식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넷째 음식냄새가 나면 산짐승의 습격을 받기 좋습니다. 다섯째 직접 밥을 하자니 나무를 해야해서 결국 밥먹는데 시간과 체력이 들어가니 수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모자라는 식량에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솔잎가루(소화가 안되어 좀 든든하게 느껴집니다)나 여러가지 가루내기 좋은 약초등을 섞어서 한 수저먹고 물 한모금 마시고 버티는 것이 최선인 것입니다.

적게 먹고 버틸려니 에너지원이 모자라 몸안의 노폐물까지 소화시키게 되니 수련의 초기에는 얼굴색도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수척해지고 질병에 쉽게 노출됩니다. 그러다 헛것이 보이면 때로는 바위에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가 끼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가 끼어서 죽기도 하구요. 이렇게 해서 수련을 마치고 하산하면 오랫동안 화식을 하지 않았기에 세속의 음식냄새가 역겹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나 자신은 반 정도는 신선이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선식이란 메뉴가 나올 만한 배경입니다.  

이런 생활의 편이에서 오는 과정을 거쳐서 단순한 비상식량내지는 전투식량인 미숫가루가 선식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은 불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경우나 선식은 비상식량이지 일반적인 화식의 상위개념이 될 수가 없습니다.

4. 현대인이 선식을 하고싶다면

위와 같은 과정을 이해하신다면 결코 선식이 건강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다만 시간에 쫒기는 현대인들한테 선식은 분명히 하나의 편의식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선식만들기의 이치를 말해봅니다.

첫째 선식의 재료는 자신의 타고난 체질을 고려하여 기미에 맞는 곡식을 선택합니다. 곡식의 종류는 다양한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밀착성이 강한 밀가루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야채와 해산물도 역시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고기도 선택해도 됩니다. 다만 고기는 미숫가루를 만들기 어렵고 나중에 쉽게 부패할 수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셋째 모든 식재료는 반드시 익혀서 바짝 말립니다. 익히는 목적은 위생소독과 소화의 편이때문 입니다.

넷째 이것들을 제분소에 맡겨서 가루로 만듭니다. 이 가루를 밀봉하여 때에 맞추어 드시면 음식을 먹는 시간과 조리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소화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루이기 때문에 소화액 침투가 빨라 소화가 편할 수는 있지만 량이 많으면 역시 소화에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다섯째 비록 미수가루를 물에 타 마신다고 하더라도  먼저 넘기전에 반드시 입에서 이로 씹는 운동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소화기를 보호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다섯째 생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생식은 취향입니다. 그러나 생식을 하기 때문에 몸의 병을 낫게한다는 거짓선전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가 화식을 하게된 이유는 화식이 우리 몸에 부담을 적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몸을 편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생식해서 일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생식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평소의 잘못된 식섭생을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의 라면은 이러한 선식의 연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좋은 음식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편이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는 사람들한테 권하는 음식은 찰떡 한 조각입니다. 아침에 음식을 먹는 것은 내장이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생리기전이고 그 가운데 찰떡을 선택한 이유는 찰떡은 오래 씹어야 하는데 오래 십게 되면 위장 장애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