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해봅니다. 세상에는 별일이 많은데 그런 별일 가운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들의 머리로 인식할 수 있으면 과학적이라고 말하고 그렇지 못하면 비과학적으로 말하지요.
하나의 예를 들어봅니다. 아침에 동전을 던져서 그림이 나오면 하루의 재수가 좋다고 믿고 숫자가 나오면 재수가 없다고 믿으면 그것은 누가 보아도 비과학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전의 앞뒷면과 자신의 재수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달동안 그렇게 시도해보니 동전의 앞뒷면과 그 날의 재수가 평균확률 이상의 관계가 보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비과학적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분명히 뭔가 있다 라고 믿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비과학적으로 판단하는 근거는 사람의 마음은 동전과 재수에 아무런 작용을 하지않는다 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비과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가장 기본 전제인 관찰을 통하여 결과를 보니 동전과 재수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이치가 있는 것인데 비록 머리로는 그 두 사건의 관계에서 사람의 마음을 배제시켰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먼저 그 상관관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과학이 더 발달하면 이 상관관계에서 동전과 재수는 별개의 사건이지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개입이 되면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어떤 상관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밝혀줄 것입니다.(현대 양자물리학에서는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만 고전물리학에서는 아직 이거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 봅니다.)
사설이 길어지네요.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 기전을 모르는 일들이 세상에 많은데 우리들의 좁은 지식으로 모든 것을 함부러 재단하지 말고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지혜와 동시에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위에 보면 아들을 꼭 기대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불임부부도 있고 딸만 낳은 부부들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어느 경우이든지 그저 자연에 맡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인위적으로 노력하면 그 만큼 결과는 나옵니다만 그러나 그 결과가 나오는 만큼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는 또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눈에 보이는 숫자로 나타내주지 못한다고 해서 우주적인 이치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이치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복잡하니 여기서는 그냥 지나갑니다.
사례로 제 주의의 친구 두 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합니다.
한 분은 딸만 둘인데 아들을 기대하였습니다. 도술을 배운다고 어느 모임에 들어가 수련하면서 드디어는 평소의 자신의 욕심 즉 아들을 갖기를 원하는 욕심을 도술로 채울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당시에도 뭔가 잘 못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도술의 목적이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방편이 된다는 믿음 자체도 좀 실망스러웠고 왜 아들한테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생각이었을 뿐이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저로서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평소에 의지가 강한 분이라 옆에서 보니 아들 낳기 기도를 참으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분의 부인은 그 기도와 관련하여 꿈을 꾸었답니다 사연인 즉슨 꿈에 하얀 옷을 입은 도인 넷이 나타나 서로 말을 하기를 "이 자는 팔자에 아이가 없는데 어찌 아이를 달라고 하느냐" 하고 논쟁을 하더랍니다. 그런 꿈을 한번이 아니고 두 세번 꾸었는데 그 때마다 노인들은 계속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더랍니다. 그 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고 기도발로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시일이 지나서 기도 덕인지 수태하여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저도 축하해 주었고 그 때는솔직히 그 분의 기도발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조금 흐르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가 길거리 간판의 글자나 숫자등을 기억하는데 너무 똑뚝하였는데 대신 자폐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 아이가 성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의 엄마나 아빠의 마음고생 몸고생은 남들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의 첫아이는 딸이었고 오랬동안 아들을 기다린 끝에 아들을 보기는 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이상하여 병원에 가보니 선천성 뇌질환으로 진단이 나왔습니다. 달리 치료할 길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돌파리에 매달려 치료하다가 결국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아들을 보기를 전보다도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좀 친했으므로 제가 옆에서 뭘 그렇게 아들에 집착하느냐고 쓴소리도 한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후에 집안에 불행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혹여 세월이 흘러 나중이라도 그 아들이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되면 가슴아픈 기억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뭔든지 하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이나 사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자연의 이치로 설명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꼭 아들낳기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가혹한 말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안 생기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선의학이든 현대의학이든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입니다. 뭔가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면 반드시 그 만큼 잃는 부분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하나도 없는 분은 입양이라는 제도( 이제도는 아주 오래된 것이고 또한 일부 동물사회에도 있습니다.)를 이용할 수 있고 딸만 가진 분들은 딸로서 만족하면 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딸로 만족합니다.) 제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갇히어 아들에 집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출처] 강남할아버지한의원(www.harabiclin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