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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신 칼럼 22차 - 풍수와 혈 II - 남면(南面)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2. 5. 12. 10:34

시공간에서의 삶이란 이동과 정착의 연속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보다나은 공간을 찾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거나 정착한다. 우리의 아득한 선조도 지평선 너머의 대륙에서 남쪽의 발해근처의 땅으로 그렇게 이동하여 정착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면 고향을 그리듯이 우리의 선조들의 혼(魂)속에 북쪽의 지평선너머는 자신들의 뿌리인 조상들이 살던 이상세계로 새겨진다. 그 이상세계를 천(天)이라고 했다. 천이란 글자는 본래 지평선(一)을 넘고 또 너머(一)에 있었던 인(人) 즉, 선족의 조상을 뜻했다. 선족이 문명이 낮은 토착민(土着民)의 지배자로서 자리를 잡고 민(民)을 바라보는 자세가 남면(南面)이다. (천에 대한 개념은 동아시아 역사학자 라이샤워교수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분이 지금 선군(=단군)이 되어 발해 북쪽에서 민(民)을 바라보라. 얼굴이 어디를 향하겠는가? 바로 남쪽이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의 문화에서 모든 주재자는 남면하는 것을 전제하는 이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라. 동쪽은 푸른 바다가 있고 서쪽은 흰 사막과 산이 남쪽은 뜨거운 태양이 북쪽은 어둡고 깊은 하늘아래 얼음이 있음을 볼 것이다. 이것으로 남면인의 좌(동)청룡 우(서)백호 남(전)주작 북(후)현무의 사위(四圍)의 상징이 생겼음을 알 것이다. 여기 남면과 사방의 공간에서 남면하는 주재자를 둘러싼 기 흐름은 항상 사행(四行)이 되어야 하고 남면하는 주재자와 사방(四方)간의 기의 순환은 천기가 사방을 순환하는 것과는 별개의 순환임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방(方)이 행(行)으로 확대된 것은 양기(陽氣)인 해가 동쪽에서 떠서 가장 더운 남쪽을 지나 다시 서늘한 서쪽으로 진 후 어두운 땅을 지나 다시 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후인들이 주재자인 하나님을 - 즉 사람을 - 사방에 동격으로 끼워 오방(五方)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순환시킨 것이 오행(五行)이다. 따라서 후대에 오행설이 나올 때에 이미 선사상(인내천)은 왜곡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주재자는 없어지고 그냥 순환이라는 자연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자리의 천지간의 기운을 살피기 위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세상을 바라볼 때는 세상의 풍수를 느끼려 할 것이고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의 기운을 살피려면 바로 그 사람 주위의 풍수를 느끼려 할 것이다. 자, 지금까지 우리의 선조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그림으로 그려진다면 이제부터는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主體)는 집도 아니고 죽은 몸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바로 스스로 하나님임을 인식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황제내경의 맨 첫 장인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에 아득한 선조들의 참모습인 진인(眞人)에 관한 구절을 보자.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진인은 하늘과 땅을 손에 쥐고 음양도 손에 쥐고 우주의 정기(精氣)로 숨을 쉬고 스스로 정신과 몸을 하나로 지킬 수 있으니 수명이 천지가 다하도록 끝남이 없다.” (黃帝曰 余聞上古有眞人者提挈天地把握陰陽呼吸精氣獨立守神肌肉若一故能壽敝天地无有終時此其道生.) 고 하여 진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시공을 조절할 수 있는 영원한 존재로 그려진다. 독자들에게 개념을 좀 더 뚜렷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제설천지파악음양을 다시 해석하면 이것은 말 그대로 시공을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뜻이지 유교적 매트릭스에 갇혀 있던 후세 학자들의 해석처럼 천지의 변화와 음양의 법칙에 순응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순응하는 사람은 성인과 현인으로 분명하게 급을 분류해 놓았다. 이 말은 선사상에 있어서 풍수의 주재자는 사람이고 그 주재자가 사방과 사행을 주관한다는 뜻이지 주재자가 지위를 망각하고 사방과 동격으로 떨어져 오방이 되고 오행으로 소멸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의 글을 잘 따라온 독자들은 동양사상의 근본이라고 알려진 오행설은 선사상이 잊어지기 시작한 역사시대의 고대에서부터 풍수의 주재자(=사람)가 없어진 채로 왜곡되어 전승되어 왔고 그에 따라 선족의 역사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 것을 조금 씩 이해할 것이다. 단적으로 다시 말한다. 우리 혼속에 깊이 스며있는 선사상의 핵심은 우주의 주재자가 바로 나, 즉 사람이다. 흔히 동양사상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자연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인격신도 아닌 바로 진정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인 우리는 전지전능은커녕 당장 생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무슨 모순인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각자는 컴퓨터 단말기다. 하나의 단말기는 이용자의 내공에 따라 모든 단말기를 통제할 수도 있고 단순히 이용자로 그칠 수가 있다. 즉 지금 컴맹의 단말기라고 해서 그 단말기가 컴도사의 단말기와 다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 즉 삶이란크게 보면 컴맹이 컴도사가 되어 모든 단말기를 통제할 수 있는 과정을 밟는 길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임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선이란 뜻이다. 선의 과정 가운데 주재자가 천지사방의 기흐름(사행)이 가장 효율적인 자리를 이용하여 정신과 몸을 발달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그 자리를 혈(穴)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