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민의신 칼럼 25차 풍수와 혈 V - 민간신앙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2. 6. 2. 12:29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존엄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아득한 옛날 우리의 선조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단군의 부계인 소수의 인(人)과 모계인 다수의 민(民)이 어우러진 사회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선족의 문화는 무지한 대중한테는 감성으로 전해지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시적인 삶에서의 감성이라는 것은 곧 생명유지와 관련된 것이 우선인데 그 흔적을 요즘 사람들은 민간신앙이라고 부른다. 단어에서 묻어나는 느낌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무지한 대중이 믿는 신앙이라는 느낌이 들어있다. 그런데 감성이란 것이 아무런 경험이 없이 과연 허공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일까?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의 어는 한 곳이라도 화가의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듯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그 본질인 하나님이라는 마음이 들어있지 않는 것이 없다. 다만 그 형상에 따라 영혼백(靈魂魄)으로 분류할 수 있는 깊이가 각기 다를 뿐이다.( 영혼백과 육체와의 관계는 필자 저 “밥상위의 한의학”을 참조.) 이 내용을 선인들은 당신들이 곧 하나님이며 또한 세상의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님의 다른 모습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가벼이 여기지도 말라고 민(民)들에게 전했을 것이다.(이 말의 불교식 표현은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그러나 민들은 이 가르침을 깨달을 인식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저 일상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산이나 강 바다 그리고 짐승들이 고맙고 한편 두려웠을 것이다. 모든 형(形)과 상(像)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다는 가르침은 민들에게 만물에는 인격신이 있다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민(民)들한테는 특히 밥과 땔감을 주는 산이나 물에는 더 큰 신들이 있어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원시부족생활을 하는 지구상의 오지 사람들한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생각을 정령신앙, 영어로는 animism 이라고 하는데 animism이란 모든 형상에는 신이 있다는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이것만 보아도 정령신앙은 범세계적인 생각이고 또한 범세계적이란 말에서 그 기저에는 어떤 보편적인 이치가 숨어 있다는 말도 된다. 우리 조상들은 삶터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가장 지배적인 신을 대표화시켜 산신 수신(용왕신)으로 이름을 붙였고 그 신들은 마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주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한편 민(民)들을 무지에서 깨우치게 해주고 생활을 이끌어주었던 조상가운데 선인(仙人)들은 죽어도 영혼은 남아 여전히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것은 옛 민중의 인식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따라서 한 마을의 생활권을 경계를 짓는 곳인 마을입구나 고갯마루 등에 선인을 모시는 신성한 예배소를 만드는 것 역시 당연한 행위였다. 많은 선인 가운데 대표적인 선인을 왕이라고 칭하여 선인왕 즉 선왕이 거하는 장소에 집을 지어 모시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이어 내려오게 된 것이 선왕당 혹은 서낭당이라고 생각된다. 위대한 조상을 모셨던 선왕당은 불교가 들어오고 유학이 융성하면서 아마도 지배계급으로부터 배척되고 천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곧 하나님이란 선인들의 가르침이 이미 민(民)들한테도 감성으로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불과 유는 그 감성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어서 불가에서는 산신각 용왕각을 별당으로 모시고 있고 선왕당은 아직도 시골 마을에 홀로 사당(祠堂)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처연하게 웃음 짓고 있다. 참고로 우리가 당연시하는 천신(天神)의 개념 - 즉 전지전능한 인격신이 인간이 갈 수 없는 허공에 살면서 세상을 주관한다는 개념은 옛날 민들의 감성에는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의 민들은 하늘이라는 공간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들이 산을 인식할 때는 동식물이나 무생물을 총괄적으로 주관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여 산왕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하늘을 인식할 때는 풍백 운사 칠성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개별적인 신으로 인식을 했어도 하늘을 하나의 권역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간적인 하늘이 천신의 개념을 갖기 시작한 시기는 주(周)나라 후기라고 한다. 용어의 개념을 명확히 하자면 옛 선인들이 말한 하늘 즉 하나님은 허공에 거하는 그러한 인격신이 아니고 온 우주를 만들어내고 우주자체로 존재하며 본질은 시공이 있기 전의 존재인 큰마음을 말한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공(空)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사람은 이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갖고 있으므로 마치 하나의 나뭇잎이 깊은 줄기를 따라가서 옆의 잎을 느낄 수 있듯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무(巫)라 한다. 무란 령(靈)에서 온 말인데 이는 인식의 수준이 혼백(魂魄)보다 더 깊은 마음인 령(靈)의 영역까지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巫)는 본래 선(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후에 선이 잊히면서 무는 선왕당이 그랬던 것처럼 천시되어 지금의 만신이 된 것이다. 만신이란 몸 하나에 만 가지 신(神)이 들락거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신은 몸을 갖고 있는 주재자가 제 정신이 있으면 신선이 되는 것이고 제 정신이 없으면 만신에 휘둘려 오늘날의 무당이 되는 것이다. 제정신이 있다는 말은 남면한다는 말이고 제정신이 없다는 것은 남면할 주재자가 사방신(四方神)에 휘둘려 혼백이 빠진 상태라는 말이다.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 편의 백두대간의 풍수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산신각이나 용왕각에서와는 달리 선왕당에서는 돌탑을 쌓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 역시 묘를 혈자리 모양으로 만든 것과 같이 선인이 재(在)하니 혈의 기운을 모으려는 유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