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운세라면 보통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이 세상에 몸을 갖고 나올 때 이미 기본적인 계획을 갖고 나오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운세는 타고난 운명이란 말도 그른 말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오늘은 사업장에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계획했던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항상 계획대로 상황이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사람의 삶에서도 세상에 나올 때의 계획대로 항상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돈을 벌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으로 식구들과 즐기는 것을 계획했지만 그러나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그렇게 사나 단간 방에 츄리닝에 라면먹고 사나 그게 그런 것 같고 대신 아름다운 음악이 한없이 좋게 보인다면 살아가는 도중에 당초의 계획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설계변경에는 당연한 잡음이 따르듯이 이 과정에서 삶의 굴곡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삶의 굴곡에서 제대로 헤쳐나가기가 어려우면 저절로 운명이란 단어가 생각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거나 혹은 제도권의 권위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유사한 상담을 받고자 합니다. 이런 상담이 뜻하는 바는 한편으로는 운명을 전제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진실로 사람들의 마음이란 단순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라비의 결론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은 있었고 (이것을 사람들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하고) 그리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호기심이나 정보를 통하여 그 계획을 주체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운명을 개척한다고 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한다고 하지요)
자, 그러면 하라비의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꾸려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알아봅시다.
1. 운세(運勢)란 말 뜻
모든 말에는 우주적인 힘이 들어 있습니다.(이 부분은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따로 논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떤 문제를 공부할 때 그 주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주제가 되는 말의 원뜻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이해가 되면 되는 수준으로 안되면 안되는 수준으로 그냥 지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세(勢) 란 힘의 강약과 방향을 말하는 것이니
운세는 자신의 기의 강약과 그 흐름의 방향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운세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삶의 흐름이 환경 속에서 헤쳐가는 강약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 지에 대한 총체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가 강하면 세파(시대의 흐름)를 헤쳐가는 힘이 강할 것이고 또한 세파에 흐름에 잘 타는 것과 맞서는 것과의 차이도 매우 다를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의 운세가 기운도 약하고 방향도 맞서는 거라면 바로 도태될 것이고 (약자)
기운은 약하지만 방향을 잘 타면 그런대로 살아갈 것이고 (서민대중)
기운이 강한데 방향이 맞서면 삶의 의지는 충만한데 피로할 것이고 (혁명적인 사람들)
기운도 강하고 방향도 맞으면 매사가 쉬워 세상이 우습게 보일것입니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
단 운세는 기의 흐름이므로 선악의 분별은 없습니다. 선악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에 표현한 것이니 선하다고해서 방향이 좋아야 한다거나 악하다고 해서 기세가 약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운세는 단순히 에너지의 흐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선( 혹은 악)을 쫒는 사람이 악( 혹은 선)한 세파에는 결국 맞설수 밖에 없으므로 그 사람의 기가 약하면 병에 쉽게 노출되어 도태될 것이고 기가 강하면 오히려 혁명을 일으켜 세파를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비록 악해도 건강하고 체력이 좋고 기가 강해 잘 나가고 반대로 힘든 사람들은 비록 아무리 선한 의지가 있어도 몸이 건강하지 않거나 기가 약하여 중병에 쉽게 걸려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그야말로 힘없는 자의 슬픔을 보여줍니다.
2. 시대흐름의 기와 자신의 몸의 기흐름과의 관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사람은 무리를 이루고 산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운세가 있다면 개인이 모인 사회의 운세도 있는 것이니 이를 그냥 시대흐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흐름과 개인의 운세와는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늘 생깁니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의 흐름이 서로 다를 때는 서로의 운세가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은 사회를 완전히 떠날 수 없으므로 개인의 운세는 다른 개인의 운세와 휘말리게 됩니다. 즉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해를 보다 쉽게 예를 들어봅니다. 바다에 작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닙니다. 한 마리가 방향을 틀면 모든 물고기가 같이 방향을 틉니다. 만일 한 물고기가 방향을 엉뚱한데로 틀어 무리에서 떠나게 된다면 그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의 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물고기 떼는(물론 그 중에서 대장이 있겟지만) 전체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살아가는데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구성원 서로 간에 부딪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도시로 나가려고 해도 반대로 산으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때 산에 오려는 개인의 기운이 강하여 주위에서 산에 오는 것을 막는 개인들의 기세를 물리칠 수 있다면 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대신 갈등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의 소모가 필요합니다. 이건 극단적이 예이지만 현실에서는 크든 작든 방향이 180도 다른든 10도가 다르든 이와 같은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의 소모가 필요한데 그 사람의 환경에 따라 기가 소모되는 량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편하게(기의 소모가 적다) 살고 어떤 사람은 힘들게 (기의 소모가 많다) 사는 것입니다. 전자는 사람들이 팔자가 좋다고 말하고 후자는 기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물질에 기반을 둔 현세적인 판단일 뿐 영적인 진화와는 상관관계가 약합니다.
처음 세상에 나올 때는 이러이러한 계획을 갖고 나왔지만 막상 세상에서 살아기기 위해서는 그런 계획을 실행하려다 보니 많은 어려움도 생기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세월은 가고 죽음에 이르면 당초의 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다음 생에 실현시키겠다고 다짐하고 돌아가서 다음 생에 비슷한 계획을 다시 갖고 태어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반복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더운 날 축구(이 생의 삶의 목적)하기로 했는데 막상 운동장에서 뛰다보니 너무 더워서 나중에 축구(다음 생에 교정된 삶의 목적)하기로 한 상황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여기서 당초의 계획을 완전히 끝내거나 혹은 계획을 수정하여 다른 일(축구대신 배구 등)을 하고자 한다면 많은 기운(체력과 의지)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기운은 어디에서 얻을 수가 있을 까요? 바로 우리의 오장입니다. 오장의 기운이 균형을 이루어야 분별있는 판단력과 의지가 나옵니다. 만일 어느 한 부분에 병증이 생겼다면 많은 기운을 병증에 소모시키니 새로운 체험을 위하여 나아가는 살림살이에 기를 소모시킬 수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판단력과 의지가 약해져 시대흐름에의해 자신은 완전히 쓸려가게 됩니다. 즉 자신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집합체에 함몰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한테 개인의 힘을 과시하게 할 기회를 결코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금 왕회장이라고 하더라도 몸에 병이들면 그 기운은 약화되니 저절로 다른 사람들이 그 약해진 틈을 메꾸려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3. 운세를 바꾸는 법
한 사람이 갑자기 평소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지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노인이 그러면 "죽으려나 보다." 라고 하고
젊은이가 그러면 긍정적으로 보아 "환골탈태 했네" 라고 합니다.
위의 두 경우를 생리적으로 보면 어떤 경우이든 지금의 몸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전자는 지금의 몸을 버린다는 뜻이고 후자는 그 몸을 이용하되 구조와 기능을 완전히 재조립한다는 뜻입니다.
즉 행동이 달라지면 운세도 바뀌는 것인데 보다 근본적으로 운세를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몸의 상태를 개선시키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는 기본인식인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성명쌍수가 바로 이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금의 자신의 상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이 부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 정신과 몸을 바꾸어야 합니다. 정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감성의 깊은 곳에 들어가 그 감성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하는데 이는 전신의 영혼백 단계 중에 적어도 혼의 단계까지 들어가 혼에서 만든 당초의 계획을 지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대부분이 불가능합니다만 이론적으로나 잠시 설명합니다.
1) 환혼
혼이란 오랜 감성이 쌓이고 쌓여서 만든 개성체이므로 이 단계까지 가서 당초에 계획했던 것( 이생에서 체험하고자 했던 것)을 지우려면 삶에 대한 전반적인 깨달음을 얻든지 혹은 아주 극한 상황에서 부분적인 깨달음을 얻든지 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는 다는 것은 이제 충분히 체험을 해보아서 호기심이 없어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청소년이 당구를 처음 배우면 잠을 잘 때도 당구를 치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이 때는 공부는 뒷전이지요. 그러나 요전히 자신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진정으로 바란 바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다 충분히 당구를 치다보면 어느 덧 당구에 대한 호기심도 사라지게 됩니다. 당구가 별게 아닌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마치 깨달음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삶에서 이런 깨달음은 흔하지 않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혹은 죽을 때가 되었거나 혹은 깊은 수련으로 전반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나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혼을 바꾸는 방법은 보통 사람들이 선택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2) 환장
한 사람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사람은 환장했다고 말합니다.
환장이란 오장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장은 인간의 감성을 간직하고 내뿜는 인체의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뀌면 평소의 감성이 나오지 않고 마치 미친 사람같이 기이한 감성이 나오니 환장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환장이란 주로 나쁜 뜻으로 쓰인 말인데 그러나 이 부분이 알려주는 것은 아주 뚜렷합니다.
오장이 바뀌면 미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운이 상승할 수도 있다는 뜻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환장할 수 있을까요? 요즘은 외과수술이 발달하여 오장을 이식수술도 하는데 이식수술로 긍정적인 효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생물적인 삶이 연장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오히려 퇴보할 것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은 너무 길어서 생략합니다.)
요즘 흔한 말로 오장을 리모델링(개보수)하면 됩니다.
즉 쇠퇴한 오장의 기능을 올려주면 결과적으로 자신한테 맞는 환장이 되는 것이지요.
오장은 사람의 모든 기가 생기고 저장되고 나오는 곳이니 평소에 오장을 잘 관리만 해주면 운세는 최적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사 시대흐름이 반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오장의 기운이 강하면 그 만큼 시대에 저항할 수 있구 저항한 만큼 시대 흐름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한바 있지만 잘나가는 사람들은 오장의 기운이 좋습니다. 실은 좋기 때문에 잘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섭생의 잘못으로 오장의 기운이 쇠하면 그 사람의 일반적인 운세도 쇠퇴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운세를 바꾸려면 가장 근본은 자신의 영혼을 되돌아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어려우므로 보다 현실적인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오장의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예컨대 생활에 부대끼어 몸과 마음이 극히 피로해졌을 때 가장 먼저 오장의 균형을 잡아주면(건강) 서서히 생활운세(복)도 풀려가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