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나 영화 등에 사람이 극한 공포를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누거나 똥을 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그냥 과장된 표현이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흔하게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1. 왜 그럴까요?
그 생리기전을 말하기 전에 우선 공포 혹은 무서움이란 감성에 관한 풍수, 즉 기흐름에 관해 알아봅시다.
( 이 부분은 책 " 밥상위의 한의학 " 에서 사람의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를 말할 때 감성과 기흐름 일반에 관한 글을 참고해 보시면 좋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몸 내부에서는 물론 몸의 내부와 외부사이에서도 끊임없이 기를 순환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극한 공포란 상황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뜻하는 것인데 이는 생각한 결과로 나타나는 감성이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혼백 속에 각인된 감성으로 마치 조건반사와 같은 감성인 것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생각보다 먼저 감성이 생명의 위협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될 때, 자신의 기를 발산시키면 더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각인된 감성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를 일순간 멈추면( 소위 우리 말에 얼었다 혹은 쫄았다 라고 하지요. 즉 기흐름이 얼어서 정지했거나 혹은 쫄아들었다는 표현입니다. ) 심장에서 먼 곳부터 기운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있는 기운은 눈과 머리와 심장으로 모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황을 판단하고 어느 쪽으로 피를 보내야 하는지 준비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심장에서 가장 먼 곳은 골반강이니 생식기가 쫄아들고 항문과 방광근육이 힘을 잃게 되니 그곳에 머물러 있던 소변과 대변을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되어도 위와 같은 과정이 똑 같이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근육에 힘이 없으니 그육으로 막아놓았던 구멍이 흐늘해지면서 내용물이 밖으로 흘러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풍수와 관련하여 그 생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런 예를 들었지만 현실에서는 무조건 자신이나 주위에 이런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포라는 상황을 피해야 하겠지요.
2. 그렇다면 공포는 어디에서 올까요?
공포는 바로 예측하지 못했고 동시에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거니와 또한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심력의 소모가 너무 커서 결국은 어떤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물론 특이한 경우 예컨대 요즘 막장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 자신의 악행이 실수로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경우 등은 예측이 가능합니다만 보통은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엉뚱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공포를 피하는 방법은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이것도 막상 닥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늘 기억해 두면 자동차 예비 키 처럼 혹여 쓸모가 있을 지 모릅니다. 즉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면 무조건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벗어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그 공간을 벗어나야 하겠지요. 이것은 무조건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할까요? 공포가 있는 방향을 제외하고 모조건 넓은 곳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예컨데 인신매매단한테 납치를 당했다면 당장 무섭다고 따라가면 시간이 갈 수록 공간적으로 점점 더 좁아지고 그 만큼 생명의 위험도 더 증가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넓은 공간을 향해 뛰거나 뛸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생명의 위협이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올 봄, 날씨가 유난하여 벚꽃이 피기도 전에 갑작스런 빗물에 떨어져버려 안타까웠는데 ... 이런 이야기를 진작에 해주었다면 혹여 한 아이라도? 하는 막연한 미안함때문에 조금 어두운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