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 소문편, 자금론 (刺禁論 )에 나온 말로 刺라는 말이 찌른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문맥을 보면 침을 찌르는 곳을 뜻합니다.(자침이란 침을 놓다는 뜻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즉 자금론이란 침을 놓는 부위 가운데 피해야 할 부위에 대한 의론입니다.
관련 글을 잠시 인용하면
황제가 묻기를 "자침을 금해야 하는 곳에 대해 듣고자 합니다." 하니
스승인 기백이 답하기를 "오장에는 급소가 있으니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네. 간은 왼쪽에서 생기고 폐는 오른 쪽으로 잠기고 ( 肝生於左, 肺藏於右 ... ) 심은 겉을 지배하고 신은 속을 다스리고( 心部於表, 腎治於裏) 비는 (기혈의 순환을 전신에 ) 보내는 일을 하고 ... ( 脾爲之使 ... )
1. 좌간우폐에 관한 언어적 관점
1) 원전
좌간우폐란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은 일일히 상고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그런 지엽적인 상고는 관련 전문가들이 할 것이므로) 관련 글들을 찾아보니 여러 곳에서 위에 적혀있는 자금론의 '간생어좌 폐장어우' 라는 말에서 좌간우폐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다보면 긴 단어일 경우 단축해서 쓰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위의 '간생어좌 폐장어우' 의 여덟자 보다는 '좌간우폐' 라는 간단한 단어가 쉽게 통용될거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니 특별히 상고할 필요성이 없기도 합니다.
2) 전승과정
공부 잘하는 학생이 시험보기 위해서 암기할 때 긴 논리를 일일히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간단히 정리한 요약된 글자를 암기합니다. 글자만 떠오르면 관련되는 내용을 스스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보통 수준의 학생인 경우는 이 요약본을 그대로 외웁니다. 관련되는 내용까지 익히기에는 시간도 걸리고 또한 능력도 떨어지니 요약본이라도 잘 외우면 그래도 기본점수는 나오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이 요약본은 학생들에 의해서 어느 덧 교과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련되는 깊은 내용은 없어지고 요약본에 나오는 단어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좌간우폐란 단어도 같은 과정을 격은 것이 뻔한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변해왔다고 확신합니다.
3) 말소리의 변화에 따라 개념도 변화함
좌간우폐도 말이 달라지자 어설픈 학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개념이 생겨납니다. 처음의 해석 - 간은 왼쪽에서 생기고 폐는 오른 쪽으로 잠기고 - 은 사라지고 간은 왼쪽에 있고 폐는 오른 쪽에 있다는 뜻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한번 이런 개념의 변화를 갖게되면 이런 해석 자체가 현실과 합치하지 않으므로 실없이 번잡하게 다시 이에 대한 구구한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해석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니 보는 관점에 따라 혹은 그 해석자의 이해 수준에 따라 제각각일테니 중구난방이 되는 것이죠. 좌간우폐에 대한 해설은 여기 한의학뿐 아니라 중의학에서도 늘 입에 오르는 문구이자 개념이니 이에 대한 구구한 해설은 독자분들이 직접 검색해서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이 단어의개념에 대한 해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좌간우폐에서 좌우와 간폐란 공간적이고 정적인 양의학의 해부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풍수적이고( = 기의 흐름 ) 기능적인 동아시아의 한의학적인 개념이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문 자금론에 나오는 심장 신장 비장도 역시 그러합니다.
2. 좌간우폐가 해부학적인 도형으로 굳어짐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의서 '난경'이란 책을 보면 사람의 장부를 설명하는 글이 나옵니다. 위치와 크기와 무게 등이( 肝重四斤四两,左三叶右四叶, 간은 왼쪽보다 오른 쪽이 크다는 말)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에 간의 위치를 몰라서( 이과 관련하여 요즘의 양의사와 일부 한의사들의 무지에 관해 아래에 후술 할 것임) 좌간우폐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할 것입니다.
좌간우폐의 개념의 변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듯이 지식정보가 쉽게 지역적으로 혹은 계층적으로 여러 사람들한테 통용되기도 어렵고 또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지식정보가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학문자들이 배운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지식정보에 대한 개념은 배운 사람들의 개별적인 이해수준에서 그칠 것이지만 그러나 어느 정도 통용된 개념이 글이나 그림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은 배운자들의 개인적인 이해의 편차와는 별개로 이어져 내려올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땅으로 내려오는 좌간우폐에 관한 재미있는 그림이 발견되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필자가 최근에 우연히 얻은 서울대에 위치한 규장각에서 조선시대의 교육에 관한 전시회를 하였는데 그 전시회 소개 책자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는 책에 나와 있는 좌간우폐에 관한 그림입니다.
(규장각 전시회 책자에 소개된 려말 권근이 지은 '입학도설' 이란 책에 나오는 도설. 입학도설이란 성리학 입문서라고 한다. 규장각의 해설을 보면 주돈이의 태극도를 바탕으로 성리학 이론을 설명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입문서에 뜻 밖에 장부해부도를 그려 놓은 것이다.)
참고로 동의보감의 해부도(신형장부도)에는 좌간우폐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3. 입학도설의 신형장부도에 대한 해설
1) 선 사상은 성리학에도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위의 그림에 관한 해설에 앞서 더 놀란 것은 (물론 필자의 지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합니다만) 성리학이란 유학의 관념론에 가까운(적어도 보통 수준의 우리들한테 알려지기에는 ) 철학 입문서에 왜 인체의 장부도가 나왔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입문서라 함은 가장 근본적인 개념을 알려주는 교재가 되는데 거기에 사람의 육체와 성리학의 근본이 바탕이 되는 철학적 개념이 같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장부에 철학적인 개념을 배속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건 이미 내경에 오장에 정신의 여러 분야나 감성이 오장에 배속된 것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이는 결국 성리학도 기본적인 고대의 사상, 즉 황제내경이 갖고 있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편 성리학적인 인격의 수양에서도 육체의 수련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선 사상이란 선족 즉, 고대 우리들의 직접적인 혈연적인 조상들이 갖고 있던 우주론을 말합니다.
동 아시아의 중앙, 그러니까 한반도의 서북 쪽 어디엔가 존재했던 문화를 이룬 민족집단을 (소위 북방민족 혹은 동이족)을 가리킵니다. 그 문화가 지금가지 알려진 역사에 나오는(비록 왜곡된 역사라 할지라도) 동아시아의 문화의 시원이 되는 문화이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야금술과 문자였습니다. 북방에 있었던 야금문화의 대표적인 문화를 요즘에 스키타이 문명이라고 하는가봅니다. 이것과 바로 우리가 지금도 쓰고 잇는 문자를 만든 민족, 즉 요즘 한자의 원형이 바로 그 문화이고 이 야금술과 문자로 인해 동아시아의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문화를 가진 선족의 가장 핵심적인 우주론은 바로
2) 장부도의 해설
성리학이 현실적인 정치체제에 의해 통치철학으로 응용은 되었다고 하더라도 저 그림에서 보듯이 그 몸과 마음에 대한 철학적 바탕은 역시 몸과 마음은 서로 같은 것이고 주종의 관계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성리학에 문외학인지라 언급하기 거시기 합니다만 보통 성리학하면 일반 사람들한테 알려지기로는 개인의 수양이 관념적인 개념과 그것에 기반한 도덕적인 행위로만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이 입문서에서 강조한 도설에는 그 수양이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몸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해 준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문외한으로서(=일반인으로서) 성리학을 잘못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하나의 충격으로 와 닿습니다.
자, 그런데 동아시아의 문화가운데 꼭 알아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역사의 왜곡과 관련되어 소위 제도권의 역사학자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개념을 하나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자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그 주체자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남면(南面)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2) 남면
위의 그림은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의 여는 그림이나 혹은 의궤의 그림이나 혹은 어떤 주재자를 설명할 때 꼭 인식해야 하는 개념이 남면입니다. 즉 남면이란 주재자가 남쪽으로 얼굴을 향한다는 뜻인데 이는 특별히 명시하지 아나하더라도 어떤 주재자가 설정이 되는 그림이나 문장 혹은 의사표현에는 항상 당연한 전재인 개념입니다.
왜 주재자는 남면일까요?
이 부분을 간단히 설명하면 동아시아의 문화를 만든 민족이 북방민족, 즉 선족이고 그들이 어떤 이유로 남하해서 정착한 지역이 황하유역과 조선땅입니다. 그들은 문화를 갖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토착민의 지배계층이 되었고 토착민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자신들은 人이라고 하고 토착민은 사람은 사람인데 등짐을 진 듯한 모양의 民이라고 차별화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문화적 상징에는 人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人이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人의 얼굴은 늘 남면하는 모습으로 전제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도설에 나와 있는 신형장부도 역시 남면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얼굴은 독자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머리 아래는 심장을 그리고
심장의 오른 쪽에 폐 두개를 배치했습니다.
심장의 왼편에 간과 위장관을 배치했구요
그림의 정 가운데는 비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오른 편에 신장과 부속기관을 배치했구요.
그런데 이런 배치는 실제의 해부학적인 구조와 다른데 위의 도설을 만든이들이 실제의 장부를 모르고 한 것이 결코 아님 만큼 바로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 본 글의 목적입니다.
3) 좌간우폐 (肝生於左, 肺藏於右)
이 신형장부도의 해설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남겨두고 일단 죄간우폐와 관련된 부분만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선 좌간우페라는 말에서 그 개념이 간은 왼쪽에 있고 폐는 오른 쪽에 있다는 말로 잘못되이 인식되어 있으므로 이 말을 원래의 의미 즉, 肝生於左, 肺藏於右 라는 말로 바꾸어 놓겠습니다. 그래야 개념이 오염되지 않고 제대로 전달될 것이니까요.
' 肝生於左, 肺藏於右'라는 말을 해석하면
간생어좌는 간은 왼쪽에서부터 생긴다는 뜻인데 이를 다시 해석하면 肝氣는 동쪽에서부터 생기고(그림이 남면한 자세이므로 왼쪽은 곧 동쪽이 되므로)
폐장어우는 폐기는 오른 쪽으로 들어가 저장된다는 뜻인데 이를 다시 해석하면 肺氣는 서쪽으로 들어가 저장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또한 사람(주재지)이 남면하면 해가 어두운 새벽에 동에서 떠서 오후의 밝은 서로 지는 것처럼 양기(陽氣)가 그렇게 몸에 영향을 주는데 이와 같은 이치로 사람의 에너지(양기)는 음기에서(어두운 새벽, 즉 간의 음기) 양기가 나와 (간의 양기) 대사활동을 하고 다시 밝은 오후(폐의 양기)에 음기로 들어가(폐의 음기)로 저장되는 순환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음양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충실하지 않는 분들은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그러려니 하시고 넘어가면 됩니다.)
즉 사람의 기본 생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의 에너지는 오장(음)에서 양기가 나와(이걸 간기운이라고 함) 다시 양기를 다 발산하고 음기만 남겨 다시 오장(폐)로 들어가 순환한다는 뜻인데 이 또한 어려우니 더욱 간단히 설명하면
간은 바탕이 음장인데 간음에서 양기를 처음 밖으로 발산시키니 이를 간기라 한다. 간기는 동이니 좌로 표현한다.
폐는 바탕이 양장인데 폐양에서 음기를 추려 몸에 저장하게 하니 이를 폐음이라고 한다. 폐음은 서이니 우로 표현한다.
바로 이것이 좌간우폐의 본 뜻입니다. 한의학의 기본 중의 기본 생리인데 이를 간은 오른 쪽에 있고 폐는 왼쪽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한의학의 기본 중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4) 입학도설과 좌간우폐의 대응
이미 이해를 하신 분들한테는 실없는 해설이 될 것입니다만 아직 잘 이해가 안되는 분들을 위해 입학도설과 좌간우폐가 말하는 기본 생리를 반복해서 정리해 봅니다.
그림의 검은 부분은 음을 표시하고 밝은 부분은 양을 표시 합니다.
뇌가 있는 부위(뇌의 정중앙)는 둥글게 표시하고 밝게 표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우주를 뜻하고 우주 자체는 그냥 양으로 표시했습니다. 그 둥근 부위를 다시 오른 쪽(남면한 자세에서)은 검게 표시해 음을, 왼쪽은 바라게 표시해 양을 나타내느데 이를 태극으로 순환시키고 있습니다.
몸과 가슴부위에서 간이 있는 왼편은 바탕을 검게 표시하고 겉은 밝게 표시해 간음에서 양기나 나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른 편은 반대로 바탕은 양기(폐양)인데 겉은 검게 해서 음기로 표현해 폐양에서 음기가 들어가고 저장되는 것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좌간우폐의 개념을 입학도설에서는 아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관련 전공자들이 더욱 천착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 도설하나로 학위논문 몇개는 나올 것 같네요.)
5) 헤르메스학
고대의 지혜가운데 서양에는 헤르메스 학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위에 이야기한 한의학의 음양설과 거의 같습니다. 아마 단어에서 오는 그리고 표현과정에서 오는 다름은 있을 지언정 개념의 다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헤르메스학에서 말하는 음양과 좌간우폐에서 말하는 음양을 비교해 봅니다.
해르메스학에서는 오른 손잡이를 기준하면 오른 편이 양(전기)이고 왼편이 음(자기)라고 합니다.
좌간우폐에서는 오른 편이 폐이니 즉, 양이고 이 과정에서 음이 저장되기 시작하고 왼편은 간, 즉 음이니 이 과정에서 양기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헤르메스학이나 한의학의 음양은 같습니다. 다만 순환하는 과정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느냐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의학도들 가운데 간의 양기를 강조하다보니 간기운 자체를 양기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폐의 음을 저장하는 기능을 강조하다보니 폐기운 자체를 음기로 잘 못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또한 그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인식의 오류는 음양에 대한 개념이 엷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음양은 어느 부분 혹은 어느 과정에서도 있습니다. 간에는 간양과 간음이 있고 폐에도 폐양과 폐음이 있습니다. 전체로 보면 간은 음장이고 폐는 양장입니다. 다만 음장(陰臟)에서 양이 나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간양 혹은 간풍 이란 말이 나온 것이고 (간의 음양비율은 음이 8 양이 3 ) 양장(陽臟)에서 음이 저장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폐음 혹은 폐금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폐의 음양비율은 음이 4 양이 9).
4. 한의학에 대한 폄하에 대한 비판
1) 좌간우폐
한의학에 대한 비판은 주로 양의학도들에 이루어집니다. 비판자가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비판이 나쁠 수도 없고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이 합리적이라면 백번 받아들여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비판이 아무런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서슴없이 맞비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 설명한 좌간우폐란 말입니다.
좌간우폐란 간이 왼쪽에 있고 폐가 오른 쪽에 있다고 해석한 후에 해부학의 실제적인 위치와 다르다고 한의학은 기본생리도 모르는 미신적인 주장을 학문으로 포장했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만일 그런 비판자가 최소한의 문화사에 대한 상식이 있었다면 그런 비판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양의학도는 동아시아 문화와 문자와 의학에 대한 기본 사상을 알지 못하고 그냥 아전인수격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난은 받아들여할 가치가 조금도 없습니다.
양의학도가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합니다. 정말 문제는 한의학도가 이런 비판을 받고 나서 보이는 반응입니다. 즉 양의학도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좌간우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못하
고 오히려 한의학을 폄하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런 비판에 동조하는 한의학도는 정말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의학도는 한의학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후배 한의학도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의 옛 한의서를 한번 만이라도 제대로 보았다면 혹은 다 그만 두고 가장 기본적인 상식만 갖추었어도 좌간우폐란 말이 이상한데 이건 어떤 이유일까 하고 생각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면 그런 바보같은 주장에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사실 좌간우폐에 관한 궁금증은 옛 한의학도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옛 의서에 보면 좌간우폐를 설명해달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다만 그 설명은 기혈순환이나 단순한 음양으로 설명했기에 필자는 그와 같은 설명을 배제하고 필자 나름대로의 문화사적인 배경을 갖추어서 알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2) 좌신우명문
약 이천여년 전에도 의학에 대한 궁금증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황제내경 자체가 황제가 기백한테 묻고 배우는 것을 정리한 것이니 의학에 관한 토론은 끊임없이 이어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는 책이 있는데 '난경(難經)' 이란 의서입니다.
거기에 보면 신장이 두개있는데 왼쪽 신장과 오른 쪽 신장의 기능에 관한 여러 의학자들의 토론이 나옵니다. 필자는 지금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하고 줄을 긑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토론문화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왓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즉 한의학이란게 그냥 누가 뭐에 좋다고 하니까 그런 기록을 모아서생긴 그렇게 단순한 경험집합체가 아니란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시대를 거쳐가면 치열한 논재과 경험으로 입증한 과정을 통해서 쌓여진 하나의 이론체이자 입증체인 것입니다.
솔찍히 오늘날 양의학에서서 신장하면 둘다 같은 것으로만 이해하지 서로 다를 거라는 것을 누가 말하고 있나요? 이런 주장을 허위주장으로 몰아부치기 전에 오히려 비록 결과는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히 좌우가 다른 것을 탐구해 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의학은 양의학보다 앞서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오장상호작용생리
요즘은 이 부분에 관해 양의학도들의 비판인 많이 수그러 들긴했습니다만 서양인들이 해놓은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연구를 외운 내용으로 또한 그 표현을 생화학적인 영어나 현대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과학적이란 자부심으로 한의학은 두리뭉실하다고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증에 관하여 오장의 상호작용에 관한 한의학적인 설명이 점점 현실에 합치되자 양의학도들이 점차적으로 한의학 이론을 응용하고 수입하고 있다고 믿어집니다.
예컨대 전에 서울대에서 나온 주장, 즉 역류성식도염에 소염제를 많이 복용하면 심장질환이나 폐렴이 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는 바로 오장의 상호생리와 연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구환경을 고려해볼 때 결코 제약회사에 불리한 연구로 방향이 정해질 리는 없을 것이라면 결국은 그것은 한의학의 기의 승강ㄷ출입이라는 가장 단순하 생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리고 역류성식도염의 뭔천적인 병인이 심장에 있어 그 병증이 전병(진화)될 때 위장관을 막아놓으면 폐로 전병된다는 것을 유추한 것으로 억측해 봅니다.
만일 이 억측이 맞다면, 필자는 그 양의사를 진심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한의사들 보다도 더 한의학적 이론에 진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의학의 기본 이론에도 오장 상호간의 작용에 관한 이론이 있습니다. 안지오텐신이론이나 오르니티회로이론이나 다 그런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런 이론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서구에서 한의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이후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쓸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말이 참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의학도든 양의학도든 혹은 일반인이든 이미 경험으로 입증된 이론을 비판할 때는 그 이론의 어디가 잘 못되어 실제와 괴리되고 어느 부분이 옳바러 실제와 합치하는 지를 분명하게 한 후에 잘 못된 비판을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