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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과 전방 소대장 그리고 봉와직염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7. 5. 10. 11:38

황제내경이라는 책은 한의학의 시원이 되는 책입니다. 고대에 황하유역지방에 세력가였던 황제(黃帝) 라는 사람이 기백(岐伯)이라는 스승과 사람과 우주의 변화에 대하여 묻고 답한 것을 후세의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따라서 처음의 내용은 많이 변질되었을 것이고 또한 후세의 사람들의 의견들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내경(內經)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몸 내부에 관한 진실한 말이란 듯입니다.
이에 대하여 외경이 있을 만도 한데 만일 있다면 몸의 외부 즉 일반적인 유교경전을 뜻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의계 내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 신념으로 모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생명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 생명관이란 우주와 인체는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는 사례별로 인정하는 부분과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한의학을 처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는 것이 황제내경인데 막상 읽어보면 너무 단순하고 황당한 논리가 전혀 이해가 안 되어 결국 맥이 빠지게 됩니다. 어찌 보면 황제내경은 머리만 가지고 이해하려면 도무지 이해가 될 수 없는 책입니다. 즉 인생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을 나름대로 곱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그런대로 이 단순한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들어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가운데 작은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내경에 사계절이 몸에 주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겨울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면 봄이 되면 사지의 힘이 빠지게 된다는 생리이치가 있습니다. 이런 문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의문을 품는 것은 겨울이야기에 왠 봄 이야기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 의문이 하필이면 왜 사지인가 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곧 바로 생각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방에서 소대장시절에 겪은 일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 8개월의 초급장교교육을 마치고 전방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 때가 초겨울이었는데 실무적응이 되면서 겨울을 넘기고 초봄도 지나 제법 따듯한 아마도 4월이 아니였나 합니다. 제대를 앞둔 병장이 다리가 아프다고 열외가 잦았는데 저는 이것이 말년병장의 엄살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속으로 좀 찍어놓고 또 며칠이 흘렀습니다. 하도 엄살이 부려 다리를 좀 보자고 하여 정강이를 만져보니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부은 듯할 뿐 그렇게 소리 지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반응이 거세어서 일단 인근 의원에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의무실에 보내도 되는데 본인이 의무실은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하기도 하였고 저도 대대에 뭔가 보고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분위기를 아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의원에서 돌아온 병장의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있었고 같이 갔던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고름이 한 공기는 나왔다고 하였습니다.(이것을 봉와직염이라고 부릅니다.) 붕대를 풀어보니 고름을 빼서 정강이가 쑥 들어가 있었고 근육사이에 심지를 밖아 놓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의무병이 관리해도 된다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전방에서 비밀은 없어서 그 소문은 바로 중대 전체에 퍼졌습니다. 중대선임하사가(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으면서 그거 기압이 빠져서 그런 겁니다 라고 말을 건네었습니다. 알아듣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선임하사를 바라보니 이어서 병장 쯤 되면 밖에서 근무할 때 바지 다리미 선이 안나온다고 겨울에 속옷을 안 입는 애들이 많은데 꼭 그런 애들이 봄이 되면 그렇게 다리가 곪아 고생을 좀 합디다 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즉 이런 예는 늘 있어 왔다는 말입니다. 그 선임하사의 말은 왠일인지 이후에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의 여려 경험 또한  한번 기압이 빠지면 시간이 지나서 반드시 사고가 난다 라는 평범한 이치를 몸으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내경의 말 가운데 봄에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면 여름에 무슨 병이 오고 하는 구절은 남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몰라도 저는 바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병증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체의 생리를 깊이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소대장시절의 경험은 황제내경을 읽는데 그리고 인체의 생리를 생각하는 매우 깊은 이치를 궁구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운기론을 믿지 않습니다. 운기론이란 정치적인 사람이 만든 날짜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이 사람에게 그리고 사람의 기운이 우주의 기운에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늘 확인합니다. 즉 어느 날에 태어난 사람의 운명이 어떠하다 라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지만 봄기운에 맞는 섭생을 하지 못하면 여름에 고생한다 라는 말은 이치에 닿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대한 이치를 생각할 때는 언제나 옛 군대시절을 생각합니다. 왜 훈련병들은 여름에도 추운지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리면서도 왜 귓바퀴는 껍질이 벗겨지는지 병장들은 왜 살이 빠지는지 총기사고 내는 아이들의 특이한 눈빛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특수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비교적 일찍 생을 마감하는 이치가 무엇인지 등등 많은 궁금 점을 황제내경의 다른 표현에서 발견하곤 하는데 소대장 시절의 경험이 내경의 한 구절과 연관되면서 얻은 깨달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