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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움은 자연과 계절과 감성을 같이 할 때 옵니다.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18. 10. 31. 10:42

우리 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면 경쟁이란 단어가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경쟁이란 대상이 있어야 하고 또 그 대상이 자신과 같은 동류이어야 성립되는 거죠.
어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 혹은 그전부터 ) 직장에서 퇴직할 때가지 경쟁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종종 중간에 퇴직을 해도 경쟁이 없어졌다기보다는 경쟁에서 탈락되었다는 감성이 더 강하다 보니 경쟁은 늙어도 지속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경쟁이란 개념은 자연에서 만들어준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경쟁은 마치 땅 위에 금을 긋고 달리기하는 것처럼 사람 스스로가 만들어 놓고도 그로 인해 스스로 고통을 받습니다. 이미 사회가 이러한 결계에 익숙해져 있어서 마치 사람은 경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자연을 보는 시간이 줄고 자연과의 감성이 너무 얕아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때로는 쉬고 싶어 합니다. 육체는 너무 당연하구요.
그래서 아무리 마음이 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머니 품안, 혹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가장 그런 감성에 가까운 추억, 혹은 배우자의 품안, 혹은 자녀들과의 교감 등등을 찾게 됩니다. 늘 이런 감성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평생을 경쟁 속에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감성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귀향하고픈 어떤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자, 경쟁사회 속에 살아가면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필자가 말함은 사람다움이란 배워서 혹은 훈련해서 숙달된 인간관계나 혹은 예의 선행 교양 지식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적당히 남한테 피해도 주고 적당히 남으로부터 피해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시장가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꽃을 보고 여름이 되면 땀 흘리고 가을 되면 단풍 구경도 하고 겨울이면 얼음과 눈 풍경을 내몸같이 받아들이는 그런 정서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삶의 모습은 사람이 이 우주에 태어났으므로 마치 어머니의 품을 느껴보듯이 바로 우주를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에서의 집단감성을 문화라고 한다면 우리 문화 속에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이 들어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종종 고급문화라 해서 미적으로 화장된 숙련된 기술이나 먹물냄새나는 학식이나 사회 상류층의 교양을 드러내는 그러한 문화는 사실상 무뇌만 문화일 뿐 사람의 피와 땀과 감성이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모 방송국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문화프로 중에 주말에 하는 무슨 음악회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귀족 같고 모두가 교양인 같고 모두가 미인 같고 모든 화면이 예술작품 같은데 정작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는 프로입니다. 그런 문화는 실상 죽은 문화인 것입니다. 즉 여기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보여주려 한 것이니 최소한 여기의 문화는 아닌 것이죠.

어찌보면 필자의 생각이 억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봅니다.
현대에 우리 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돈은 필수불가결한 요건입니다.
과연 돈은 무엇인가요?
돈이란 역시 사람의 피와 땀의 결과물을 다루기 편한 형태로 변형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벌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피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즉 기를 소모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돈하면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서 불리는 것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벌이 방법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비록 합법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피와 땀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벌써 요즘 젊은이들이 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도둑놈 맘보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현실입니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는 하늘이 나무가 산이 구름이 별과 달이 해도 바람도 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주는 어머니같이 자신을 품어주려고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냥 멀리 떨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나긴 논리의 연속이 될 것 같아서 간단히 비유하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고가 납니다.
더 큰 아이가 집 나가면 역시 사고가 납니다.
청년이 되어 동네를 멀리 더 나면 역시 고생합니다.
아비가 집을 나가 밖으로 돌면 그 집식구들은 참으로 개고생합니다.
엄마가 가출하면 아이들은 졸지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터전을 떠나게 되면 객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나이 들면 어디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이 자연을 너무 멀리 떠나 있으면 결과는 고생으로 마감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남녀노소를 유혹하는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지요.
예컨대 돈 쾌락 지배욕구 학문 이데올로기 종교 성취욕 등등의 본질은 없어지고 겉껍질만 남은 그런 이름들이죠.

그러다 보면 자신의 고향인 자연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늘 있지만 자연을 잃은 사람들한테 평안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아기가 아기답고 아이가 아이답고 청년이 청년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어미가 어미답기 위해서는 자연과 너무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떨어져 있으면 스스로 고독해지고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괜히 단풍 구경을 하면서 느끼는 바를 세상 사람들한테 하고픈 말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그것을 감성으로 와닿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진리를 외우기보다는 가장 먼저 하늘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날씨가 그렇듯 사람이 사는 사회도 그렇게 많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무언가에 취해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