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면 가슴 아픈 생각도 많을 것이지만 그냥 생각 없이 보면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 세상이 푸르러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저기 봄꽃들도 만발하구요. 그러다 보면 이유 없이 생기가 돌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요즘에 풀밭을 보면 어디나 노란 꽃송이들로 가득합니다.
대부분이 그 꽃은 애기똥풀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유난히 전국의 산야나 길거리에 애기똥풀로 가득 차있는 것 같습니다.
꽃이란 식물의 생식기로 나를 봐달라는 뜻이니 자기중심적으로 좁게 보면 번식하고 싶다는 뜻이고
자연의 조화에서 보면 자신이 누구엔가 많은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만일 사과가 후손의 번식이 어려운 환경이 예견되면 유난히 더 많은 꽃을 피우는 것이고
사과가 유난히 많이 달린 해에는 사과를 많이 먹는 것이 우리 몸을 위해서나 혹은 땅의 토질을 위해 좋다는 자연의 배려일 것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애기똥풀이 요즘 너무도 번창한 듯한 느낌입니다.
애기똥풀은 한자어로 백굴채라고 합니다.
양귀비과로 약간 독하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신경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구요.
그런데 이름이 애기똥풀이잖아요.
정말 냄새를 맡아보면 아기들이 기저귀 위에 노란 똥을 쌌을 때의 그런 냄새입니다.
잎이나 줄기를 꺾으면 노란 즙이 나오는데 그 냄새가 바로 그런 냄새입니다.
옛날에 몸을 다쳐 어혈이 쌓이면 묵은 똥물을 마셔서 어혈을 풀기도 했는데 똥냄새가 나니 애기똥풀 역시 어혈을 잘 풀어줄 것이라고 옛사람들이 생각했나 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경험해보니 실제로 어혈을 풀어주는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본초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애기똥풀에 관한 알고 있는 사례들을 들어봅니다.
한 55 년 전 기억입니다.
학교 갔다 오니 필자의 동네 어른이 큰 기계에 끼어서 온 동네가 난리 났습니다. 곧바로 동네의 가장 큰 병원에 옮겨졌고 한동안을 입원하여 치료했고 그리고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누워있었습니다. 기억이 흐릿하기도 하고 어려서 내용을 잘 모르기도 했는데 가슴에 붕대를 미이라처럼 감고 누워서 베개를 높이고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아마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지고 폐에 손상이 있었나 봅니다. 병원치료는 끝났으니 집으로 왔었을 것인데 그렇다고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필자의 어머니께서 직접 치료하셨는데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당시의 의료시설이나 의료기술이 미미했으므로 집에서 누워서 어머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었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참으로 최고의 치료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밀가루 개떡을 가슴과 등과 옆구리에 붙였다 떼기를 몇 날 며칠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몸 안의 어혈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을 쓰셨는데 그게 바로 애기똥풀인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애기똥풀을 베어서 말려놓고 있었는데 그 해에 정말 요긴하게 쓰신 것입니다. 애기똥풀 물을 다려서 매일 수시로 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른은 기적같이 몸을 회복하셨습니다. 몸이 회복되자 다시 일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온 국민이 그렇게 살아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4,50대에 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른은 80대에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소주 두 병을 달고 사셨지만 특별히 불편한 부분이 없었고 다만 끊임없는 소주로 인한 위암은 마지막에 발견되었지만 통증 없이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3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야리야리하고 아기 같은 이웃집 여대생이 당시에 데모를 하다가 어디론가 잡혀갔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여자이고 그리고 몸이 허약해서 그냥 유치장에 있다가 온 줄로 알았는데 실제론 엄청남 고문을 당했나 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한참 만에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퇴원시 외견상 그리고 양의사 소견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병원에서 퇴원시 담당 양의사가 보호자를 불러서 말하기를 이런 종류의 증상은 생각과는 달리 참 힘든 것이니 잘 요양을 하라고 했다 합니다.
퇴원해서 해방된 느낌보다는 당장 걸을 수가 없었으므로 대형병원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집에 왔는데 역시 집에서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눈은 완전히 풀리고 온몸이 아프고 말할 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도 필자의 어머니께서 애기똥풀을 다려서 주었습니다.
얼마 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서서히 통증이 줄고 일어서고 돌아다닐 수가 있었고 그리고 학교에 다시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본인은 그 당시의 애기똥풀의 어머니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외도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만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약초가 그렇듯이 애기똥풀이 어혈에 좋기는 하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미가 열하여 속열이 많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불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찬 기미의 본초와 배합하여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주말에 바깥나들이하다가 보니 너무도 많은 애기똥풀들이 사람들을 부르는 느낌이 들어 짧게 느낌을 적었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