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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는 자연법칙과는 맞지 않습니다.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21. 12. 3. 16:37

요즘 매체를 보면 시끄러운 정치 현장이나 코로나 관련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곁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런... 남녀 간의 이상스러운 얘기들이 가득한 듯합니다. 세상이 이런데 여기는 그저 현실성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것이 어쩌면  딴 세상에 노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이더라도 내용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결코 세상과 동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좀 튀고 싶은 사람들의 (누구나 튀고 싶겠지만...) 마음자세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 것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예부터 전해오는 말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그래서 일한 만큼 얻는다는 것도 있습니다만 이 말은 별로 와닿지 않나 봅니다.

전자도 틀린 말은 아니고 후자도 역시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러나 내용은 서로 배치됩니다. 이런 경우 어느 말을 따라야 좋은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자세에 따라 현실의 삶의 형태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글자 그대로 따른다면 비록 법으로 규제는 됩니다만 사기를 쳐서 돈을 벌어도 된다는 말이 됩니다. 한편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 범위에서도 쉬운 돈벌이는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 있는데 주식이나 부동산입니다. 이런 방법을 전문용어로 자본소득이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피땀으로 자신의 자산 가치를 올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다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는 자산 가치를 올려주는 누군가는 일한 만큼 돈을 돌아오지 않고 자본 소득자한테 돈이 새어나가는 불평등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후자를 따른다면 개인의 노력이 중시되고 일한 만큼 돈을 벌게 되니 불만이 생길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 제도하에서는 방금 위에서 말한 다른 사람의 자본소득으로 일정량이 빠져나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일한 만큼이 아니라 일한 것보다 더 적은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로 배치되는 마음자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를 선의학의 입장에서 정리해보았습니다.

1. 같은 시간계나 공간계 안에서는 총 에너지는 일정합니다.

즉 한 집단의 에너지는 당분간 일정한데 그 에너지를 어디에 얼마큼 사용하는냐에 따라 다른 곳에 써야 할 에너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당연하겠죠? 그런데 이 이치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라는 것과는 어디엔가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짐을 나르는데 손으로 나르다 보면 노력은 많이 하는 데에도 결과는 더딥니다. 그러나 수레를 만들어 짐을 나르면 적은 에너지 소모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라는 말은 참이 됩니다. 그러면 손으로 나르는 것과 수레를 이용하여 나르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수레를 만드는 기회비용을 그냥 하나의 과정으로 적은 에너지 소모라 보면 그러나 손과 수레에 소요되는 총 에너지는 같습니다. 다만 손과 수레의 차이는 손은 총 에너지를 순수하게 인력의 에너지만으로 채운 것이고 수레는 바퀴라는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들어간 총 에너지는 같아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바퀴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적은 에너지로 그 이상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 최대의 결과를 얻는 경우는 인간이 자연의 힘을 이용했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지식 정보의 한계로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이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큰일을 할 때에는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습니다.

2. 그런데 최소 최대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서도 가능할까요?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현실에서는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최소 최대의 법칙이 통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적은 에너지를 에너지 소모가 큰 결과를 얻어냈다면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이용한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아파트를 짓는데 10의 에너지가 소모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20에너지를 갖고 있는 상태로 변했다고 합시다. 10의 에너지가 저절로 20의 에너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이나는 나머지 10은 누군가가 보태준 것입니다.  주식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 부분의 문제는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결국은 다른 사람의 에너지가 조금씩 모여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 소모가 원래의 정량보다 더 들어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의 에너지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에너지의 불합리한 이동이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사회적으로 약속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죠.  이런 사회에서는 일한 만큼 돈을 벌 수도 있고 그 이상으로 벌 수도 있고 그리고 반대로 다수는 덜 벌 수밖에 없습니다.

3. 불합리한 에너지 이동과 저장을 개선하는 방법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최소 최대의 법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 바로 이 부분을 증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컨대 무한 에너지를 개발해낸다면 아무리 인간 사이에 일이라도 비용이 적게 들어가니 에너지가 특정 사람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연에 무한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러나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과학적인 발견이 그렇듯이요.

다음은 소위 옛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유교적 사상으로 말하면 대동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는 누구나 마음이 열려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입증된 바로는 인간의 탐욕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니 아마도 이 부분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의 욕망 그리고 이미 노비 근성에 찌든 사람들의 무지로 인하여 무엇이 올바른지도 흐릿해진 상태라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위의 어떤 경우이든 사회구성원이 에너지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자각이 이루어져야 에너지의 이동이 안정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각성이 바로 과학을 발전시킬 수가 있고 동시에 사회적인 에너지 불균등의 문제도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면 공짜로 뭔가를 얻을 생각을 버리는 것이 사람 세상이나 자연 세상이나 불편을 최소화시키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