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仙敎)과 도교(道敎)는 왠지 글자도 발음도 크게 달라 뜻도 크게 다른 것 같음에도 보통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가와 도가가 추구하려는 것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대의 우리가 선조들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도 그럴 것입니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선과 도는 같은 바탕에서 나왔어도 현실에서는 뚜렷하데 다른 개념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어서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물론 약간의 수정과 덧붙임을 당연할 것입니다.
1. 선교와 도교
선도는 그냥 선사상입니다. 이 땅의 아득히 먼 선조들이 저 북서쪽의 어느 곳인 지역에서 어떤 이유로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좀 더 따듯한 곳을 찾아 동남쪽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의 조상님들은 스스로를 선 혹은 단 혹은 전 그리고 그분들이 살던 동네도 역시 선 혹은 단 혹은 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가 뜨는 동쪽 맨 끝에 정착한 부족은 단군(=단족의 임금) 족이었고 그분들이 사셨던 동네를 해가 비치는 땅이라고 해서 아사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참고로 아시아는 아시리아에서 일본까지 모두 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달은 땅이란 말기고 훈민정음에는 ㅅ당으로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스탄이란 지역이 다 그런 의미이죠. 아마도 파키스탄이라 하면 박 씨 사람이 사는 땅이란 말이 됩니다.)
그분들은 문자와 야금술을 갖고 있었으므로 당신의 토착민에 대해 문명적인 우위를 갖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지배층이 되었고(=인이라 부릅니다) 그에 비해 교화 대상인 토착민은 피지배층(=민이라 부릅니다, 人이 짐을 지고 있는 모습의 글자가 民입니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군신화가 말해주듯이 단군족은 토착민과 혈연관계로 혼합되게 됩니다. 그에 비해 바닷가에 조금 멀리 떨어진 부족들은 혼합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대륙의 상족(= 상나라 즉 은나라죠. 역시 선족과 당시의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은 당시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별이 매우 뚜렷합니다. 그래서 인과 민을 구별해서 말을 했습니다. 혹여 옛 문자를 번역하는 분들이 이 개념을 무시하면 문장 자체가 이상하게 변질되어버립니다. 즉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유교 경전에 보면 교화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선족이 토착민을 깨우치는 과정을 교화인 것입니다. 애당초 선족이 지녔던 사상이나 문화는 토착민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족이 생각이나 생활 등을 그냥 선이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즉 선교의 선은 그냥 처음부터 선이었고 교화시키는 방법이 도이고 거기에 가르침이 들어가니 도교라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도교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요?
샘물이 땅속을 흘러가다 연이 되는 지점에서 밖으로 나오면 샘이 되듯이 선이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면 잊히고 또 잊히고 했지만 결국은 샘물이 되어 나온 곳이 바로 인내천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 달리 말하면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 뜻입니다.
그에 비해 도교는 선이 대중에게 변형되어 표현되는 것이니 섬겨야 하는 인물들이 생기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계급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불가와 비슷하게 여기저기 신들의 계층이 생기는 것이죠.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는 별거 아닌 듯해도 진실로 큰 차이입니다. ( 동서양의 밀교 내지는 진솔한 종교인들은 인내천이란 말을 잘 이해한듯합니다.)
2. 조선의 선
고상하게 느껴지던 고조선이 흩뜨려지면서 동쪽은 여러 부족국가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면서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를 지나 고려에 이르면서 선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늘 이어져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대륙 안쪽은 제자백가를 거치게 되고 한으로 통합 분열되는 데 그 과정에서 선의 모습은 현실을 반영한 도교로 정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선 사상이 여러 갈레로 나누어지면서 제자백가로 나타나기도 했고요.
필자가 조선의 선이 사라지는 시기를 고려 말로 보는 이유는 그때까지는 벽화에 사신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세조선에 이르르면 사신도가 사라지고 오봉도가 나옵니다. 사신도와 오봉도가 다른 것은 사신도는 내가 주인이니 네 방향의 신들은 나를 받들라라는 뜻이고 오봉도는 주인이 오행 안에 흡수되어 주인이 없어진 것인데 주인과 보호신장이 같이 순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대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조선은 내가 하나님이고 사신은 하인이란 것이고 대륙은 주인이 없는 오신이 되는 것이죠.
(사실 도교의 경전인 태을경을 보면 글에는 처음부터 온 우주가 나른 보필한다는 내용인데 이때까지는 내가 하나님이란 개념은 있었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니 그런 자리는 태상노군이나 가능한 하나님 자리란 뜻이고 경전을 외우는 신도는 그냥 하나의 하위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조선인들한테는 선과 도교가 혼재되어 흘러내려옵니다. 이유야 선사상이 흐릿해진 것이 가장 주요했습니다. 고상해 보이고 널리 알려진 많은 선비들 가운데 도교보다는 선가 쪽에 가까운 이를 보자면 윤선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단군의 맥이 끊어지려는 시기에 이르자 최제우에 의해 인내천이라고 마치 샘물이 터지듯이 터져 나온 것이죠. 독립투사들 가운데 대종교인들이 유독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있다고 봅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춥고 배고프고 갈 곳 없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란 존심이 바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이죠.
3. 오늘은 윤선도에게서 남아있는 조선의 선인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아래는 오래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조금 수정을 하면서 다시 올립니다. (약 30년 전 체험입니다.)
"인용 시작"
조선의 仙道人들의 이상향은 바로 우리들의 의식 속에 늘 들어있는 모습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선맥을 짚어가던 중에 우연히 윤선도를 알게 되었고 보길도를 가보게 되었다. 세연정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이 흥분되는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 전문가의 설명은 그저 뭘 모르는 사람의 암기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보길도가 올곧은 선비가 차를 마시며 자연을 즐기는 여유로웠던 곳이 아니라 쉰을 넘긴 몸으로 치열하게 수련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당시로서는 학맥이 없는 유학자요 정치인이었지만 동시에 조선의 선도의 한 맥을 잇는 선인이었다. 청에게 임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탐라에 은둔코자 내려가는 뱃길에 우연히 보길도를 보고 거기에서 선인의 이상향을 만든다.
보길도의 지형은 바로 자궁의 모습이다. 포구는 질구이며 포구에서 안쪽으로 시내가 있는데 그건 질이며 시내가 시작하는 부용동은 착상하는 자궁 뒷벽에 해당한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동천석굴은 보길도의 유일한 혈자리(선인의 공부 터)이며 세연정은 神功을 위한 도장이다. 윤선도는 부용동에서 자고 아침에는 동천석굴에서 아마도 태양공을 수련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세연정에서 신공 - 그중에서도 가장 마가 많이 낀다는 水神功을 수련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공부는 내가 곧 하나님이란 인식의 바탕에 이르는 길에 수없이 만나는 과정을 허무로 돌려버리는 공부임)
모르는 분들은 필자의 해석이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첫눈에 확신이 가는 만큼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니다. 아래는 내가 문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해석과는 전혀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1) 부용동 동천석굴 세연정 옥소대 등의 이름은 모두 선가의 용어들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은퇴하면 유학자가 아닌 도가인이란 막연한 해석은 수련을 모르는 글쟁이들의 관념적인 상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선수련을 모르는 유학자라면 결코 그런 흉내를 내지 않는다.
2) 세연이 단순히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못이 아니다. 만일 그런 용도의 못이었다면 조망대를(정자를) 좀 더 시야가 확 트이고 높은 산 쪽에 두어야 한다(즉 현재의 맞은편). 그런데 정자(사실상 초막)의 위치는 산을 병풍 삼아 연 못을 제사상 삼아 마치 신공부자(神功夫者)가 신위를 모시고 앉아있는 자리에 두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누가 이 자리가 자연을 감상하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3) 정자 뒤 쪽에 있는 동대와 서대라는 흙과 돌로 만든 壇은 무엇인가. 신공중 수공은 마가 잘 끼는 위험한 공부다. 신공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공 중에 입마가 되면 공부는커녕 심지어 미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따라서 도반의 호법이 필요하다. 동대와 서대는 바로 호법이 앉았던 자리이거나 혹은 탑 자체가 호법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 동대와 서대 뒤편으로 인공으로 둑을 쌓았다. 이것은 자연을 감상하는 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이것은 수공 중에 등 뒤쪽에 있는 거대한 바다로부터 오는 수마를 차단하기 위하여 만든 인공적으로 산기운을 끌어내려 수기를 막으려는 풍수의 운용인 것이다.
5) 그래도 수공 중에 수마가 침입할 약점은 있다. 바로 세연의 물이 바다로 흘러내려가는 수로다. 바로 그 자리에는 물속에 큰 돌덩이로 오행진을 만들어 마가 들어오는 길을 막았다.
6) 동천석굴은 이름이 석굴일 뿐 석굴은 없다. 단순히 한 사람이 편안히 앉아서 호흡수련을 할 수 있는 바위와 약간의 평평한 터가 있다. 내 눈에는 大穴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산세를 살펴 본 바로는 보길도에 이만한 혈 자리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더 큰 혈 자리가 있었다면 윤선도가 찾아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보니 바로 눈앞에서 해가 뜬다. 아하 이 양반이 새벽에 여기에서 호흡수련과 혹은 태양공 같은 공부를 했겠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왔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올라오기 전에 조그만 샘터가 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아래 샘터에서는 몸을 씻고 위 샘터에서는 천신에게 드릴 물을 떴겠구나 하는 - 나로서는 너무도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결코 등산한 후에 멱감기 위해서 그리고 후인들이 생각하는 하인들에게 차를 다리게 하기 위한 샘물이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샘물 주위를 살펴보니 아래 샘물에서 위 샘물을 거쳐 동천 석굴로 바로 오르지 않고(오늘날 관광객들이 오르는 길) 위 샘물에서 돌담 뒤로해서 동천 석굴로 오르는 길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선도 수련자라면 정화수를 뜬 그 샘 둑을 밟고 위로 오를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의 흔적을 찾아보니 어렴풋이 길이 남아 있었다. (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겠죠. 아마 관광 머시기라는 이유로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그러나 아주 중요한 흔적이 없어졌을 겁니다.)
윤선도의 선맥에서의 평가와 단군의 仙 그리고 조선의 仙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유적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는 시간이 나면 하나씩 올려보겠습니다. 한국인들의 사상은 도가도 아니고 불가도 아니고 유가도 아니고 샤머니즘도 아닌 바로 선사상입니다. 그 바탕 위에 도가나 불가나 유가가 덧칠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선사사상을 모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때 언제나 변두리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되는 것이죠.
한편 지극히 일부겠지만 한국사상 연구자들은 선가의 남아있는 자료나 유적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는 그런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사사상(내가 곧 하나님)을 알게 되면 왜 그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는지 쉽게 이해됩니다.
그러나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옛 선인들이 공부했던 자취는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런 자리를 단순히 시나 짓고 놀이터로 잘 못 알고 있을 뿐입니다. 선가의 공부터인 혈자리를(요즘 서양 명산인들이 말하는 지구의 에너지가 모이는 곳으로 이해하면 됨) 이해하면 무슨 무슨 臺 무슨 岩등의 관광명소가 바로 선가인들의 도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공부한 선인들은 흔히 상업용 사진에서 보듯이 아무 바위 위에 나 앉아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등산을 가시더라도 예부터 어떤 이름이 붙어있는 바위가 있다면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되면 그동안 일부 선문에서 天秘란 이름을 붙여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렸던 명산들의 큰 혈자리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이건 분명히 이 나라 모든 이들의 자산이고 또한 나아가 세계인들의 자산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컴 실력이 없어 보길도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게 안타깝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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