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상한론을 이해하기 위한 조건들

강남할아버지한의원 2024. 10. 22. 16:24

전문가용으로 전에 상한론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정하여 재등합니다.

적잖은 한의학도들이 상한론에 대하여 신기루를 쫓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 좀 더 균형적인 시각을 갖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씁니다.

아시다시피 한방처방 가운데 소위 고방(古方)이란 근세 일본이 동아시아의 고전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깊어지면서 일본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생긴 말입니다. 즉 중원역사의 시대구분 중 한대까지 고대로 보았으니 그 시대 이전에 나온 처방을 고방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상대적인 말로 후세방( 중세로 언급되는 당송시대부터 최근까지)이란 말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요.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동아시아 고전에 대한 해석은 중국이건 한국이건 여태껏 일본인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류로 알고 있습니다. 근세 일본의 학자들은 그들의 학문적인 자부심으로 명청시대의 의학적인(크게 보면 학문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일단은 무시하고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 즉 전통의학의 시원부터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이 부분은 의학사적인 근거는 확인하지 않았고 단순히 당시 일본이 보는 세계관을 보고 추론 한 것임.)

그러다 보니 고방이란 말도 나왔을 것이고 동시에 고방의 기초가 되는 상한론이 주된 고방 연구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도 가운데 책 보고 공부 좀 하는 분들 가운데, 일부겠지만 은연중에 상한방에 대해서 한의학의 고급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지적하기 위하여 의학의 기본 임무부터 말하고자 합니다.

1. 의자가 하는 일 (의사라는 말은 근세 일본인들이 내경에 황제의 스승이란 말에서 따온 듯합니다.)

의자가 하는 일은 당연히 환자의 병증을 해소 시켜주는 일입니다. 단순한 말인데 실제로 임상에 들어가게 되면 그러나 여기서부터 많은 의견이 엇갈립니다.

 

예컨대 비염이 있는 아이가 결막염이 생기면

- 요즘 엄마들은 내과에 가서 감기약 처방받고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안과에도 갑니다.

- 한의원에 오면 이렇게 말합니다. 평소에 비염도 있는데(평소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결막염까지 걸려서 애가 공부를 못해요. 결막염이 어떻게 한방으로 안 되나요? 혹은 면역력이 떨어진 모양인데 약 좀 먹어야 한지 않을까요?

- 이런 경우 양의사들도 의사가 병증을 치료하는 기전도 제각각이고 한의사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균형 잡힌 한의학도라면 이럴 경우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결막염을 치료해야 합니까? 비염을 치료하여야 합니까?

아니면 보약을 처방해야 합니까?

이것에 대한 선택은 한의사가 환자의 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결막염에 응용될 수 있는 처방들은 근세 우리 선조들의 의학 교과서인 방약합편에도 나와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런 처방을 쓴다고 해서 쉽게 치료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책을 쓴 분이 원망스럽기도 할 텐데 물론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눈이 어두운 것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아래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2. 상한론의 배경에 대한 이해

황제내경이 몸의 생리를 그 당시의 생활과 기후를 바탕으로 거시적으로 진술하였다면(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상한론은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동안 병증과 처방에 대해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내경은 기본생리를 말하였으므로 대체로 구체성이 떨어져 두리뭉실하게 보이고 임상적인 활용 의미는 별로인 것에 비하여 상한론은 환자를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증상과 처방을 기록했으므로 임상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방의 처방이 상한론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송대의 중화주의라는 시대적인 배경이 상고주의라는 경전 해석으로 나타나고 그런 분위기 속에 성무기란 분이 상한론을 추겨 올리면서 고전으로서의 자리매김이 더욱 공고해졌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늘 그렇듯이 상한론이 우상으로 여겨져 비판이 금기 시 되죠?

그런데 한방의 처방 속에는 인도의 아유르베다 남만의 민속 의학 티베트의 학 그리고 한반도와 북방민족의 민속 의학 등이 모두 흡수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상한론의 계지탕을 보더라도 계지는 황하 유역에서 볼 수 없는 약재라는 면에서 이미 당시로서는 남만의 의술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상한론이란 증상과 처방은 장중경이라는 의자가 지식이 출중하여 의료 지식적인 권위를 갖고 만든 게 아니라 당시에 알려진 치료 상식을 모아 놓았을 뿐이란 겁니다. 만일 장중경의 지식이 들어갔다면 증상에 대한 해석과 계지라는 약초에 대한 약리 해석이 뚜렷해야 합니다만 문맥으로 보면 그냥 증상에 병명을 붙이고 처방을 연결시켜 놓은 것뿐입니다. 즉 병리와 약리 이론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장중경은 그냥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죠. 물론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임은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3.상한론 처방의 이해

필자는 상한론에 대한 주석이나 각종 해설 대해서는 진실로 과문합니다. 상한론 원문(수첩과 국시용 요약) 이외에는 상한론 해석에 대해 알아본 적도 거의 없고 또한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한론 하면 분위기가 위에서 말한 대로 필자가 인식한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외람되지만 상한 처방의 치험례는 귀중한 자산이지만 그에 대한 의학적인 해석에 관한 것은 지금까지 누구의 말도 수긍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상한론의 처방에 대한 병리와 약리가 없으므로 후대의 의자들의 허황된 논리가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단한 걸 어렵게 표현하는 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이기는 하더라도요.

 

예를 들어봅니다.

 

몸이 아프면 단방으로 낫고 쌍방으로도 나을 수가 있고 수십 가지 약재 처방으로도 나을 수가 있습니다. 의자가 단방으로 처방해서 나으면 고수고 백가지 약재로 나으면 하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실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종종 한의사나 일반인들 가운데 단순한 처방으로 치료하여 나으면 고수라는 생각은 환자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의사의 기술을 기준으로 한 생각으로 생명보다는 기술을 앞세우는 생각의 틀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환자를 계층적으로 낮은 그리고 의자를 특수한 지위로 생각했을 경우에나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상한론은 처방 구성의 약재 가짓수가 후세방에 비해 아주 적습니다. 약재의 가짓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잘 되는 것이니 상한 처방이 훌륭하다는 논리는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정보와 물자의 유통이 어려우니 처방을 구성하는 약재도 몇 가지 밖에 선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을 고급 의료기술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다시 비염의 예로 돌아갑니다.

친한 친구가 비염을 수 십 년을 앓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과산화수소라는 약물 하나로 비염을 고쳤습니다. 이 사람이 의학적으로 고수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직업이 탱커 선장인데 심심해서 홀로 고쳐보자고 스스로 이것저것 해보다 우연히 생각한 과산화수소로 실험했더니 신비스럽게도 나은 겁니다.

이 말을 장중경이가 들었다면 당연히 자기 책에다 썼을 겁니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시시로 나오고 맥은 평하다면 과산화수소 다 라고 쓸 텐데 그 조문을 외워서 쓰면 고수가 되는 걸까요? 친구는 비염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품 물고 과산화수소 얘기를 합니다. 병원 가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덧붙여서요. 그래서 필자가 막 뭐라 그런 적이 있습니다. 알고 말하라고요. (그렇다고 장중경이 필자 친구처럼 돌팔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상한론의 상황을 이해해 보시하라는 의미에서 주정해본 것입니다.)

 

의사는 병증을 볼 때 환자의 생명이 얼마나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과산화수소나 소금물로 알레르기 비염 만성비염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코의 점막이 두꺼워져 비염 증상은 없어집니다. (참고로 필자 자신이 소싯적에 죽염수로 비염을 치료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비염이란 병증이 나은 걸까요? 아니죠? 그런 치료방법은 마치 귀찮다고 교통 신호등을 부숴버린 것과 같습니다. 즉 비염은 낫지만 기관지가 약해지거나 폐렴의 위험도가 증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염의 병리는 폐를 보호하기 위한 호흡 기도의 방어 기전이기 때문입니다.

 

상한론 조문을 외워서 그 증상에 처방을 골라 쓰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병리와 약리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자는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첫째 바로 몸을 최대한 이해하고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그 사람의 생명력과 연관시켜 이해하고

둘째 그리고 약물 하나하나의 기미(약리)을 이해했을 때 의미 있는 것입니다.

상한론의 이해도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병리와 약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병증에 대하여 구태여 상한론 처방부터 더듬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급하면 점방에서 구할 수 있는 야채로도 감기 정도는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4. 상한론 조문의 이해

 

그냥 외우지 말라고 권합니다.

거듭 강조합니다만 사소한 증상이라도 모아보면 증상들을 하나로 꿰뚫는 병리가 구해집니다. 그리고 병리가 확실시되면 치료를 어디에서부터 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그다음은 그에 맞는 약초를 조합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하나하나의 약초의 기미를 알아야 합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한의사님들이 약초의 기미에 큰 관심은 기울이지 않는 듯합니다. 약초의 성분을 분석해서 처방을 내는 것은 거의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요지는

의자는 증상과 진단 그리고 처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병증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떻게 증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병리기전입니다. 이 생리기전은 음양오행 이론보다도 훨씬 효율성 있는 오늘날의 생물학적인 용어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다 그런 건 아니지만)

증상이야 환자가 있으면 대부분 알게 됩니다.

진단도 책에 나온 대로 하면 충분히 내릴 수 있습니다.

처방도 사실상 어렵지만 책에 나온 대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과 병리 과정은 의자가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병리를 모르는데 처방을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병리와 약리를 알만큼 안다고 해도 어려운 게 처방인데 모르는 상태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참고로 궁금하실 것 같아 위의 비염을 다시 설명드리면 과산화수소나 죽염수로 코를 세척하면 코 점막이 자극에 반응하면서 두터워지게 되고 그러면 코 점막은 붓거나 염증이 생기지 않습니다. 즉 숨쉬기는 편해진 듯한 거죠. 그러나 문제는 비염의 본질이 폐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전이므로 코안의 점막 대신 인후부나 기관지가 대신 붓게 되거나 염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눈앞의 코를 안정시킨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코보다 더 위험한 인후부나 기관지에 염증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폐렴으로 쉽고 빨리 가게 한 것이니 이것은 병증을 치료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위중하게 만든 것이 됩니다.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폐를 위한 오장의 치료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