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에 쓴 글인데 다시 올립니다. 물론 약간의 교정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예멘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이십 년 전쯤 되는데 2024년 기준으로 하면 40년 전 기억입니다. 당시 예멘은 지금보다 사회적 통일성이 덜하여 마치 국가라기보다는 부족 연합체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후진적으로 보이는 나라지만 전통 건물들은 참 화려했습니다. 돌로 지은 5,6층 되는 수 백 년 된 가정집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물론 그 동네 돌들은 여기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가공하기는 쉬워 보였습니다.) 즉 옛날에는 꽤나 잘 나갔던 나라라는 뜻이겠죠.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예멘의 수도인 사나 풍경이 나오는데 옛날 그러니까 적어도 2, 3천 년 이상 되었을 시장의 모습은 20년(지금 기준으로는 40년 전) 전과 여전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길거리 가게에서는 마치 6,70년대의 우리나라 쌀가게처럼 동그란 멍석 위에 쌀을 산처럼 쌓아 놓고 됫박으로 팔았듯이 쌀이나 곡식도 그렇게 팔았고 재미있는 것은 각종 총알을 그렇게 쌓아놓고 됫박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대충 분위기가 그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예멘이란 국가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모카커피나 시바의 여왕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모카나 시바 혹은 석유로 알려진 마리브는 수도인 사나와 마찬가지로 예멘의 지역 이름이 자 부족 이름입니다. 시장이란 항시 그렇듯이 구경거리가 많습니다. 사나의 시장도 역시나 마치 우리나라 경동시장에 온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갖가지 약초처럼 보이는 것들이 시장 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들을 약초라기보다는 당연한 말이지만 생활에 필요한 음식재료나 기호품으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현지 통역 담당한테 물어보았습니다. "그 많은 향료를 어디에 쓰는가. 시장에 향료가 너무 많다."
현지인이 답하기를 " 당신네는 성을 모른다. 밤에 저 향을 켜고 마누라가 홀로 기다리면 무드가 다른데 당신들은 그걸( 나름대로 은은한 분위기를) 모른다." 필자는 그들 밖에서 보는 느낌이지만 그 사람들은 성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한 사회일수록 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 성을 좋아하는 것과 성을 노출시키는 것과는 별개일 것입니다. 마치 우리 선조들이 일생의 낙중 성이 대부분을 차지한 것 같은데 그러나 겉으로는 티 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요. 예컨대 옛 의서를 보면 방사과다는( 요즘 말로는 섹스 몰입 정도?) 어떤 종류의 병증이라도 하나의 사례로 들어간 것을 보면 단순한 사회일수록 성에 더 집착하고 집착하다 보면 좀 더 자극적이고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같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약물을 쓰는 것이겠죠. 체력은 딸리는데 긴 밤에 즐기기는 해야 하겠고 그러려니 자연스럽게 약물을 이용하게 되는 거죠.( 물론 약물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만...)
그 약물 중에 대표적으로 커피가 있고 그래서 모카에서 생산된 커피라 해서 지금까지 모카커피는 이름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한의학적인 기미(氣味)로 말하자면 커피는 열하고 혈분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조(燥) 합니다. 이 말은 커피가 따뜻하니 기흐름이 빨라 피 순환을 돋우고 전신이 따듯해지니 그 결과로 몸에 기운이 조금 나는 것이죠. 대신 기흐름을 빨리 시키니 에너지가 소모되어 지나치면 몸의 정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커피가 꼭 예멘의 모카지역만 생산된 것은 아닐 것이고 근처에 비슷한 풍토를 갖고 있는 에티오피아 커피도 여전히 유명하기는 합니다. 그 외에 여러 값비싼 향료(한의학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약재들인데 그 이유는 머나먼 서역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이라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귀한 약재지만 아라비아 지방에서는 음식이자 상용하는 과일이 대부분인 것들입니다.)
즉, 커피의 기미는 편한 말로 마시면 속이 좀 따뜻하고 기분이 좀 업되고 잠이 안 오고 오줌이 자주 나오고 이런 정도인데 고기 먹고 좀 느끼하면서 졸린데 커피를 마시면 소화도 좋고 정신도 나고 그러면서 흥분되는 면이 있으니 완만한 최음제가 되는 것입니다. 현지인의 소개는 커피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아는 품목이 커피 하나뿐 인지라 커피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향료 내지는 기호품은 아라비아의 유목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경험으로 입증된 이런 조각 정보들을 모아 분류하고 정리하면 훌륭한 의학지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계 각국의 전통의학이란 것들이 거의 이런 생활에서 나오는 경험에 의존하여 발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의학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예부터 지금까지 지식이 쌓여지면서 계속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소위 살 빼는 처방에 많이 들어가는 마황이란 약초도 이런 종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륙의 북부, 즉 황하 이북은 사막 지역인데 이런 지역에서 말이나 양을 기르면서 하루 종일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심심하다 보면 주위에 풀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풀을 뜯어 씹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필자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랬으니까요. 그때 풀을 뜯으면서 생각하기를 억새 풀은 풀잎에 잔털이 많아 혀가 깔깔하니 아무 생각 없이 뜯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놓고선 좀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또 억새풀을 뜯어 입에 넣고 나서는 퉤퉤거리곤 했습니다. 주로 많이 씹게 되는 풀은 줄기가 부드럽고 맛이 밋밋하거나 살짝 단맛이 나는 그런 풀들이었습니다. 예컨대 강아지풀도 자주 씹었는데 그 맛은 밋밋하기만 하고 풀 내음이 났던 기억입니다.
아마도 마황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누군가 많이 씹어보니 몸이 좀 이상해진다고 얘기를 했을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심장이 조금 흥분되는 기분도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입으로 전달되는 경험적 정보가 생각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응용되면서 약재로 혹은 완만한 최음제로 쓰였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면 이야기가 넓어지고 길어지니 여기서 그만하고 범위를 아주 좁혀서 몇 가지 자주 접하는 음식에 대한 기미를 얘기를 해봅니다.
배 참외 무화과 멜론 수박 : 기미가 매우 찹니다. 하지만 달아서 속열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죠.
그러나 속이 냉한 사람들한테는 독으로 작용합니다. 즉 속이 메슥거리거나 냉한 사람한테는 위를 무력화시킵니다.
오이 : 역시 기미가 매우 찹니다. 다만 향은 강하지요. 즉 기운을 발산 시킵니다. 그래서 차더라도 소화에는 수박이나 배보다는 덜 부담됩니다.
토마토 당근 : 요즘은 어느 반찬에나 들어가는 음식 재료입니다.
기미는 따뜻하고 혈분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기 흐름은 약합니다. 그러니 속열이 많은 분들은 저절로 피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발산력은 세서 허열이 쉽게 생기는 청소년들 가운데 싫어하는 경우가 흔한데 영양 운운하면서 억지로 먹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커피 카카오 : 카카오가 커피보다 더 뜨거운 것 같습니다. 둘 다 혈분에 들어가서 펴 순환을 돋우지만 그러나 몸을 조하게 만듭니다.
녹차 : 찹니다. 그리고 수기를 정체시키고요. 그래서 녹차를 좋아하는 중국의 보이차를 보면 발산력이 강하고 더운 기미의 약초를 배합하여 어느 정도 기미를 맞춥니다. 가미되는 본초의 강도에 따라 전체적인 녹차의 기미는 차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무 배추 : 무는 시원하고 배추는 찹니다. 무는 기분에 들어가 발산 시키지만 배추는 살짝 수렴적이어서 속을 차게 하고 수분의 흐름을 정체시키기도 합니다.( 노란 알배추 달다고 많이 드시면 속이 곧 더부룩해지거나 입에서 침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배추에 고추를 넣어 찬 기운을 조절한 것이죠. 이런 표현을 기미를 맞춘다고 합니다. 기미는 한자어라 유식인들은 알았어도 지방의 엄마들은 이해가 어려웠을 것인데 그래서 들어본 바가 있는 기미를 중성모음이 겹쳐지니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강한 발음으로 게미, 개미, 계미 라는 말로 표현되었을 것인데 지금은 전라도 말로 굳어진 듯한데 뜻으로 보면 기미가 맞습니다.
쌀과 보리 : 쌀은 평하고 보리는 시원합니다. 그러나 보리는 기흐름이 발산하여 (쉽게 날아가기) 소화에는 좋습니다. 물론 정기를 보하는 데에는 당연히 쌀보다 약합니다.
돼지고기 개고기 : 살짝 찬 편에 속합니다.(개고기는 온하다고 모든 한의서에 나와 있지만 나의 기감으로는 분명히 차다)
그래서 돼지고기 요리나 개고기 요리에는 자극적이고 매운 양념이 들어가는 이유는 찬 기운의 기미를 맞추기 위한 경험치입니다.
닭고기 소고기 : 따듯한 편입니다. 곡식이나 고기 류는 정기를 보하는데 중요한데 닭고기와 소고기는 돼지고기나 개고기 요리처럼 자극적인 양념을 넣지 않아도 기미가 맞습니다.
생선 : 아직 더운 기미를 내는 생선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조기나 박대 서대 등은 상대적으로 덜 찹니다.
다만 홍어는 발효되어 발산력이 강하여 조금 차더라도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고등어나 붕어 등은 차므로 기미를 맞추기 위해 향이 강한 진한 양념을 해서 먹습니다.
참고로 몇 개 더 추가하면
오렌지 귤 : 평하지만 살짝 따뜻한 편입니다.
사과 : 평하지만 살짝 찬 편입니다.
포도 : 조금 찹니다. 달고 발산력이 있어 위에서는 그런대로 수기를 정체시키지 않는데 그러나 대장은 차게 합니다.
생강 대추 : 아마 요즘도 한약처방에 무조건 넣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생각보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생강은 뜨거우니 역류성식도염이나 위염이 있는 분들은 피해야 하고
대추는 달아서 정을 보하는 데에는 긍정적이지만 수렴력이 강하여 요즘 사람들한테는 거의 처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요즘(2024년 여름)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차다 뜨겁다는 가장 기본적인 기미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참 반가운 변화라고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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