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우리나라의 시골 할머니들한테까지 유행하게 된 시기는 아무래도 1980년도 후반이 아닐까 합니다. 그전에는 서울 등의 대도시에서 소위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교양 있는 신사나 숙녀 혹은 도시인 혹은 대학생이나 현대물을 먹는 성인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행에 민감한 대중가요에서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라는 가사도 나왔었습니다. 그 시기가 소위 커피를 주로 파는 다방이 전국적으로 대유행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이후에 소시민의 가정에서도 커피는 손님 대접용으로 생필품이 되었고 육류 소비가 시골까지 퍼진 1980년도 후반에 가서는 커피가 쓰다고 하시는 할머니들도 상용하는 기호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유행이나 교양이나 사회적 교제 분위기에 관심이 없는 시골 할머니들은 아직도 다방커피를 좋아하시는 편이죠. 달고 좀 고소하고 그리고 피로가 빨리 풀리니까요.
요즘은 아침 출근길에서 보면 젊은 사람들이 커다란 일회용 커피 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왠지 아침 시작의 피로를 보는 것 같아 그러려니 하면서도 우리의 풍경이 영화에 나오는 맨해튼의 풍경으로 가득한 것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젊은 시절의 맨해튼에서 출근길에 커피 들고 가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들 빠른 걸음으로 출근에 바빴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고 하이힐은 가방 안에 갖고 가서 회사에서 갈아 신고했었지요) 같아 어색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이 그러하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은 있습니다.
서두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커피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생리적인 욕구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퍼졌다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퍼졌다는 말을 하고자 해서입니다. 즉 커피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썩 잘 맞는 음식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몸의 상태는 동아시아의 기후와 동고서저라는 지리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몸은 작고 피부는 얇고 열을 잘 받는 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몸무게는 되도록이면 적게 나가고 오장의 크기는 작고 몸속의 피의 양은 적은 경향을 띄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동남아 정도는 아니지만 백인이나 흑인에 비해 전반적으로 왜소하고 체력이 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커피의 기미는 우리 몸의 피를 덥게 하고 순환을 빨리하게 만들어 나중에는 피를 소모하게 하여 피를 피곤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 잘 받고 피는 모자라는 편이니 커피를 마시게 되면 처음에는 피가 잘도니 몸이 편해지는 듯하지만 커피 기운이 떨어질 때가 되면 몸은 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커피의 기미가 몸에 있는 열기를 밖으로 내보낼 때는 좋지만 이미 내 보낸 다음에는 양분 있는 피가 다시 채워질 때까지는 일시적으로 몸이 허해지기 때문입니다.
커피는 예멘의 모카 지역에서 고대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전통적인 시장인 바자르가 있습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경동시장 비슷하여 많은 골목과 여기저기 노점상과 그리고 야채 등의 생필품이 널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또 그 가운데 금방 눈에 들어오는 것 중에 하나가 각종 향료입니다. 마치 경동시장에 가면 길가에 여러 좌판을 깔아 놓고 각종 건강식품이나 농산물을 쌓아 놓고 있듯이 아랍 지방에서 나는 농산물과 향료들이 넘쳐납니다. 예멘은 예부터 농지가 잘 발달되어 있어 시바의 여왕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랍지역의 부국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니 지금은 빈국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 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다 약간의 정신작용이 있는 카트라는 잎을 많이 씹습니다. 이 카트를 씹는 풍습은 카트 생산을 늘여야 하니 결국 기존의 농토를 카트 밭으로 변환시키다 보니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을 줄어들게 만들고 동시에 노동 시간도 줄여 나라 경제를 망치는 주요 원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한지는 아마도 백 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멘 사람들은 옛날부터 몸을 흥분시키거나 몸을 안정시켜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많이 탐닉했나 봅니다.
필자가 1980년대 중반에 예멘 사나에서 근무할 때 지식수준이 높은 현지인에게 여러 약초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시장에 왜 이렇게 많은 약초들이 널려 있고 도대체 누가 사 가는지에 대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현지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당신은 커피를 왜 마시는지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니 설탕 때문에 달콤해서 먹는다고 하기도 그렇고 습관적으로 물 대신 먹는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먹으니 따라서 먹었으니, 적절하고 합목적적인 대답할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머뭇거리니까 고개를 끄덕이면 커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커피는 밤을 위해서 먹는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옛 선조들은 성을 잘 이해했고 그래서 커피는 밤에 마시면 은근히 방안 분위기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선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커피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습관적으로 마시고 있다고 우스운 일이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커피의 기미는 혈분에 들어가고 따뜻해서 혈의 순환을 빨리해줍니다. 그래서 혈액순환을 돕고 기를 위로 올려 기와 혈을 활성화시켜줍니다. 한편 혈액순환이 빨라지니 오줌도 쉽게 눟도록합니다. 그러니 저녁때 마시면 이런 작용 때문에 흥분제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아랍 사람들은 몸속에 기름기가 많아 비록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몸이 힘들어 허열이 뜨지 않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름기가 적으니 순환이 빨라 쉽게 허열이 뜨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커피의 기미가 이러므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나 혀가 붉은 사람 피부가 마르거나 혹은 긁으면 쉽게 올라오는 사람 그리고 얼굴이 붉거나 자색 빛을 띄는 사람 등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밤에 잠을 쫓는 효과 때문에 수험생들 가운데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 가운데 커피의 효과를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잠은 자지 않게 될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허열이 뜨기 때문에 오히려 책장은 넘겼는데 다음날이 되면 무슨 얘기를 이해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커피 마시고 몇 시간 헤매는 것보다 커피를 안 마시고 잠을 충분히 자고 맑은 정신으로 한 30분 공부한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음식료도 내가 취할 때는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음식료를 먹을 때 자신의 몸한테 맞는 것은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의 기미" 152 쪽 커피의 기미를 풀어쓴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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