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감

이쁜 집과 살기 편한 집

강남하라비한의원 2023. 10. 24. 10:57
텔레비전 프로나 여러 매체의 화보를 보면 이쁜 집들을 많이 봅니다. 첫눈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주로 건축가들이 전체를 계획하고 상세를 설계한 것이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마음이 가기에는 조금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직업적인 선입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이쁜 집들은 사람의 기본적인 생리와는 조금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쁜 집이 일상에서 격리되어 잠시만 쉬어가는 집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매일 생활하는 공간이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추위와 바람인데 이쁜 집들은 거의가 이를 무시한 것 같기 때문이죠.
이쁜 집은 소위 풍광이 좋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터가 넓어야 하고 그리고 창문이 넓거나 많아야 하는데 터가 넓으려면 바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창문이 크거나 많으면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죠.) 거기에 집이 이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집 모양이 이음선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아무리 건축자재나 설계가 완벽해도 습기의 침입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바람, 추위, 습기는 사람의 생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쁜 집일수록 비생리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살기 편하고 생리적인 집은 어떤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에 사람들이 흔한 방식으로 지은 집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은 물을 얻기 쉽고 따뜻한 곳입니다. 바람도 적고요.
흔히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배산임수의 지역이죠. (주로 햇볕이 잘 들어야 하니 남향이 많고 물이 근처에 있으니 농토에 쉽게 접근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지역에 따라 개성이 가미됩니다. 우리 같으면 남부 지방은 일자(一) 중부 지방은 ㄱ자 북부나 산간 지방은 ㅁ자로 바람과 추위를 고려한 집의 기본 골격입니다. 그리고 여름에 물난리나 습기를 생각해서 돈 있는 사람들이 지은 기와집은 돌과 흙으로 터를 돋우어 기초를 평지보다 높게 합니다. 그래야 비가 많이 와도 아궁이에 물이 차지 않으니까요.
요즘 유명인들이 마치 교양처럼 말하는 단어 - 즉 비유라는 풍광은 우리한테는 특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국토가 대부분이 얕은 산으로 되어 있으므로 집 지을 때 경제적인 여유와 마음만 먹으면 풍광은 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별도의 정원 설계가 필요하지 않죠. 보통은 툇마루에서 보는 풍광 자체가 정원이니까요. 여유 있는 사람은 약간의 손길로 주위의 환경을 이용하면 마당 안에는 아주 작은 마당 밖은 아주 큰 그 자체로 훌륭한 정원이 됩니다.
흔히 풍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넓은 물이나 높은 산 혹은 보기 드문 숲 등을 생각하는데 물론 이런 풍광도 좋지만 그냥 산동네 마루에서 저 멀리 겹겹이 늘어선 집들이나 길에 오가는 사람이나 차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 소리가 거대해 보이는 자연 풍광보다 더욱 정감이 가는 풍광이 아닐까요? 만일 이런 풍광이 조금 복잡하다 싶으면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밭과 논 그리고 얕은 산과 숲을 늘 볼 수 있으면서도 생활이 편한 집들을 충분히 지을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많은 다른 나라들은 사방이 지평선으로 되어 있어 나름대로 화목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별도의 정원 설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시사철 정성을 들여합니다. 물론 마당 가꾸기는 그 자체로 즐거움입니다만 사정에 따라 한 달만 관리가 안 되어도 마당은 어울리지 않은 잡초와 독버섯 등으로 금방 허접해집니다. 한편 이쁜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자체도 매일 가꾸고 정리 정돈이 안되면 바로 지저분해지고 동시에 벽면에 곰팡이가 퍼지게 됩니다.
참 위에서 배산임수를 말했습니다만 도시 아파트에서는 어렵습니다. 도시 아파트는 되도록이면 살기 편하게 설계된 집을 찾으시고 때로는 그것이 어려우면 배산임수의 의미에 근접하게 약간의 손을 보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게 중요한 점은 집은 편하게 쉬는 곳이니 적당히 어질러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매체에서는 소개되는 고급 카페 같은 집은 결코 어질러지는 것을 어울리지 않아 결코 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집을 생리적으로 따듯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솔찍이 불편합니다. 집을 따뜻하게 유지한다는 말에는 단순히 집안사람들의 체온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집은 무생물이지만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과 같은 생명체로 인식하셔야 합니다. 집도 춥거나 너무 덥거나 혹은 습기 차거나 바람을 많이 맞으면 이음선부터 뒤틀리고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흉물이 됩니다.
참고로 옛날부터 공동묘지가 있던 곳은 거의가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겨울에 가장 먼저 눈이 녹기도 하지요. 따라서 그런 곳은 집터로서도 아주 좋은 곳입니다.
- 끝 -